글 - 허공에 쓴 편지

182, 또 미쳤습니다.

虛手(허수)/곽문구 2007. 12. 8. 15:07

미쳤다는 사전적인 의미가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라는 뜻이지만
내 자신에게 스스로 "미쳤다"고 하는 대부분의 경우엔
제대로 미친 게 아니라 자신을 인지할 만큼의 정신은 어느정도 남아있어
병원이나 의사의 신세를 지지 않고서도
본인 스스로가 마음만 먹으면 제 정신을 다시 차릴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미쳐 본 일은
참 오랜만의 일입이다.

한참 미쳐있을 때 그랬던 것 처럼
이렛동안을 하루씩 사이를 두고서 이 산 저 산으로 쏘다니다 보니
비록 고생한 장딴지는 뻐근하지만
머리는 맑게 개고 마음은 가볍기 그지없습니다.

무등산 서석대를 오른지도 오랜만이고
억새의 하얀 꽃가루가 샛바람에 다 져버린 꼬막재도 오랜만이고
스님의 까까머리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는 중머리재도 오랜만이며
어등산 능선을 비지땀 흘리며 걸어본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입니다.

비록 보이거나 잡혀지는 건 없을지라도
어떤 일에 몰입해 있을 때 만큼이나 느낌이 좋아서
할 일없었던 날들을 떠나 보낼 때처럼
아쉬움 같은 건 없어서 좋습니다.

조금은 지친 듯 피곤할 때가 좋습니다.
잠을 이루기 위해 벼게를 보듬고 뒹굴지 않아도
눕기만 하면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가
다음 날 새벽녘이면 으스러지게 기지게를 켜며 일어나
개운한 느낌으로 새날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에 쫓기는 듯 마음을 여미고 있을 때가 좋습니다.
마음이 느슨할 때면 어김없이 자리잡곤 하는 잡다한 상념들은
내 일상에 무거운 짐이되곤 하는 것들일 뿐만 아니라
한번 자리를 차지하면 털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런 틈새는 미리 없애는 게 좋을 일입니다.

무슨 일이든 미친 듯 하고있을 때가 좋습니다.
하는 일이 가치를 기대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욱 좋을 일이나
그렇지 못할 지언정 마음 붙여 할 수만 있다면
빈둥대며 상심하는 것 보다는 몇 배나 더 좋을 일입니다.

한 이렛동안은
예전에 그랬던 것 처럼
미쳐서 쏘다녔습니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헐떡이고 심장의 맥박이 요동을 치는 순간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 다시 나락(那落)으로 빠지지 않을 자신감도 생겨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미치니 그리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할 일없이 빈둥대는 시간들이 더 없이 무료하기만한 나로선
미쳐서 쏘다니는 일이라도 있는 게 더없이좋을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내게 지워진짐의 무게가

견뎌내지 못할 만큼 힘에 겹다는 뜻은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