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78, 맛없는 고구마를 보냅니다.

虛手(허수)/곽문구 2007. 11. 11. 02:35

올 봄에 여섯이랑에 심었던 고구마를
오늘 두 이랑째 캐 왔으니
밭에는 아직도 네 이랑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셈입니다.

고구마를 여섯 이랑이나 심게 된 이유는
아내나 내가 즐겨먹는 간식거리를 내 손으로 심어 먹겠다는 심사였지만
기왕 심는 것 조금 더 심어서
내 형제들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과 이웃에 사는 사람들끼리
조금씩 나눠먹겠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밭에 고구마를 심기 시작한지 올해로써 3년째,
해마다거의 같은 면적에심어서 나누다 보니
어떤 이들은 이맘때가 되면 "올핸 고구마 안주냐?"며 미리 묻곤 합니다.



(쇠스랑질 하는 폼으로 보아 전직이 일 잘하는 상머슴은 아니었나?)

나의 부모님께선 고구마 농사를 지으시며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내가 어렸을 적 부터 가장 즐겨먹던 간식거리였으며
고향을 떠나온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내 손수 심은 고구마를먹고 있으니
고구마와 맺은인연은 참으로 길고 깊었던셈입니다.

맨 처음 심었던 그 해 초가을,
고구마를 처음 캐와 삶아서 먹으려니
차라리 무우를 먹는 게 더 낫다는 느낌이 들어서
적잖이 실망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도데체왜 이렇게도 맛이 없는지 그 이유를 안 것은
그 다음 해고구마를 심을 무렵이었습니다.
고구마 순은 밭에서 가까이에 있는 마을의 한 아주머니한테 구입해서 심었는데
순을 뜯어 나물용으로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함이라서
고구마가 맛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순만 잘 자라는면 되는 종자를 선택해서 심는 모양입니다.

다행히도 고구마의 수분이 어느정도빠져나갈 무렵
즉, 늦가을에 캐서 집에 뒀다가 한 겨울에 먹으면
내 고향의 빨간 황토밭에서 캐낸 밤고구마 만큼이나 맛이 있었기에
일찍 캐먹어도 맛이 있다는호박고구마는한 이랑만 심었을 뿐
올 해도 그 품종을 다시 심었던이유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가능한늦 가을에 캐다 보니
어른 머리통보다 더 커버린 고구마가 많아서
먹기 적당한것들만 골라담은상자마다

내 형제들의 주소를 적어놓습니다.



(자루가 부러진 쇠스랑과내 아내의머리보다 두배는 더 큰고구마)

농사를 짓는 일이란
질기고 악착같은 잡초와의 전쟁을 끊임없이 해야만 하고
때론 독한 농약을 뿌려야 하고 육체적으로도 어느 일보다 힘겨운 일이지만,
고구마는 농약도 비료도 할 필요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요즈음엔 풀이 돋지 못하도록 검정비닐로 이랑을 덮고서 심어놓기만 하면
잡초같은 것은 걱정할 일도 아니기에
어느 농사보다 손쉽고 안전한 먹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항암식품으로 고구마만한 게 없다"는 내용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내 어릴적 꿀꿀이 죽을 얻어먹을 때배웠던"은혜로운 나라"라는의식은 지워진지 오래지만

남아도는 옥수수 가루를 태평양에 수장시켜야 할 그 당시만큼

지금 그 나라에 고구마가 남아도는 것은아닐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비록 맛 없는 고구마지만
이보다 더 훌륭한 간식거리는 그리 흔치않을 거라는 생각에

형제들의 몫을 짓고 남은 한 상자를 보내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2007년 1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