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목련(9, 별똥별을 기다리며)
주인댁 누나가 우리 집에 손님으로 와서 처음 맞는 밤, 설겆이를 끝낸 어머니께서 손님이 있는 방으로 건너 오셔서 '아버지께서 소죽을 끓이시며 구운 고구마인데 시골에선 먹을 것이라곤 이런 것밖에 없다'며 쪽박에 담아오신 잘 익은 군고구마의 껍질을 벋겨 손님에게 권하셨다.
누추하지만 내 집처럼 생각하며 마음 편하게 지내라는 말씀과신세를 끼쳐드리게 되어서 죄송하다는인사가 주인과 손님으로써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지만아직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손님을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의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가 있었다.
마지막 남은 군고구마의 껍질을 벋겨서 누나에게 권하신 어머니께서"큰애기 피곤하실텐데 일찍 주무시게안방으로 와서 자라"하시며건너가셨다. 아직은 초저녁이었지만 한 겨울이라서 작은 동네에 인적은 일찍 끊어지고 도시에서 온 겨울손님은 토탐집 따뜻한 방에 누운 채 호롱불이 흐느적거리는 광경이 신기한 듯 흠뻑 취해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밖으로 나오려는데 혼자 있기가 무섭다는 듯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어디 가려고 그래?"
"잠시만요! 하늘 좀 보고 들어올게요!"
"하늘은 왜? 또 눈이 와?"
"아니오! 별이 떠있는지 보려고요"
어려운 나들이를 한 만큼 나는 누나에게 내 고향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구경시켜 주고 싶었다.
겨울이라서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밤하늘에서 별들의 반짝거림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나를 따라서 밖으로 나왔던 누나가 밤하늘을 쳐다보자마자탄성을 지른다.
“아~! 저렇게 많은 별들이 왜 저렇게 가까이 있지?”
“지금은 초저녁이니까 그렇지 새벽엔 더 많은 걸요! 삼태성, 송사리별, 은하수...."
내가 아는 별들을 손가락질 해가며 누나에게 뽐내듯 가리키고 있었다.
“별이 저렇게나 아름다운 줄은 정말 몰랐다, 난 시골에서 별을 보는 건 처음이거든!“
인기척을 들으셨는지 아버지께서 안방문을 열어 우리 두사람이 마당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곤 걱정을 하셨는지"밤바람이 차니 밖에 오래있지 말아라"하시며 문들 닫으셨다.
“여름엔 남쪽하늘에서 별똥별도 많이 보이는데........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들어준 데요!“
“유성을 말하는 거냐?”
“예, 별똥별이라 하거든요! 그런데 겨울엔 잘 안보여요!”
“왜 그렇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하나쯤은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혹시나 하며 남쪽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도 별똥별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 겨울이 아닌 여름이었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생각에 마냥 아쉬웠지만그렇다고 해서 여름방학 때 또 다시 우리집에오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나에게 아무 말씀도 안 하시지만 내가 모시고 온 손님이 조심스러울 뿐만 아니라,이번 한번으로도 주인댁 누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의껏 한 셈이며, 주인 아주머니께서도 결코 또 다시 허락하실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님! 달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세요!”
“달은 보이지 않는데?”
“예! 시골의 달은 게으르고 추위를 잘 타니까 겨울밤엔 잘 안나와요!”
“뭐라고! 그런 말이 어디 있냐?”
더 이상 밖에서 오래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누나의 등을 떠밀어 방으로 들어왔다.
피곤한 탓인지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어안방으로 건너가려고 했으나 어둠이 짙게 내린 집뒤안 대밭에 있는 감나무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올빼미 울음소리와 외양간에서 소가 되새김질하는 소리가 무서워서 혼자선 잠을 잘 수가 없다는 누나를 두고 나올 수가 없어서 방문쪽으로 이부자리를 따로 깔고 누웠다.
한참이나 흔들거리며 타는 호롱불을 바라보던 누나가 피곤해서인지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런 걱정도 없는 듯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는 누나의 호롱불빛에 비춰진 얼굴은 참으로 곱기만 했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올빼미의 울음소리도 그치고 외양간에선 암소가 크게 내쉬는 숨소리만 가끔씩 들리는 걸 보면 녀석도 어느덧 잠이 든 모양이다.
꿈결이었는지 첫닭이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두 사람이 잠들어있던 그 시간에 호롱불은 혼자서 밤을 지새며 흐느적거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깊은 잠에 취해있는 누나가 깰까봐 조심스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감방산 능선위로 솟아난 하현달이 초가지붕에 비추니 하얗게 내려앉은 찬서리의 반짝거림이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려와 있는 것처럼 황홀하다. 손님이 편안히 잠들어 있는 외양간 방문에도 호롱불의 은은한 불빛이 내려앉아 창살마다 그림자를 내려놓고 있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남쪽하늘을 바라본다.
별똥별을 보는 순간“누나의 병을 낫게 해 달라”하려고.....
찬 서리에 발가락이 깨질 듯 시려워 못견딜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