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72, 착각은 상처입니다.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1:39

내 나이 지천명에 이르고 보니
좋은자리 잡아 멍석을 펼 정도는 아니나
내 나름대로의 잣대를 들이대며
몇번씩 접했던 사람의 됨됨이에 대해

나의 느낌을 말하곤 했습니다.

모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독선적일 것 같은 사람,
자기중심적일 것 같은 사람,
겸손하여 갖춰진 사람.........

사람마다 보는 눈은 다르다지만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하다보면
내 생각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내게도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할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예전에 나는 "친구"라는 말을 참 어렵게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친구란 내가 어려울 때, 또는 친구가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만이 친구일 수 있다는
내 아버님의 가르침이 계셨던 탓에
이 세상의 아무나 친구가 되거나 되어주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지 그런 관념의 경계선이 흐릿해 지면서
고향에서 함께 자랐던 사람들은 고향친구,
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은 학교친구,
또는 사회친구니 직장친구니 하며
친구라는 말을 아무에게나 편하게 써 왔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친구"란 어떤 관계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과 의미까지도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와 어떤 일로든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들을
일부러 구분하여 선을 긋거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내 안에선 은연 중에 친구와 직장동료,
동창과 고향선후배 등으로 자리메김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나 기쁠때나 슬플때에도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마음의 크고 작음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며
있으면 당연한 것 처럼 없으면 아쉬운 듯 살았던 녀석들몇 놈이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아주 떠나고 나가버린 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마냥 그 허전함과 쓸쓸함이

언제까지 계속될런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녀석들이 살아있었다면 내가 녀석들한테 그랬듯이
나를 홀로 병실에 누워있게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녀석들의 빈 자리가 넓고 허전하며 시리고 아프기만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던 녀석 중에
가끔씩 아주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그럴 때 만큼은 안 보면 차라리 마음편해 했던 녀석이
연일 병실에 오거나 아니면 전화라도 해서 안부를 묻거나 하며
녀석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세상을 먼저 떠나가버린 녀석들의 빈자리를
어느새 이 녀석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또 다른 한편에선......
비록 이해관계는 없었지만 날이면 날마다 얼굴을 맞대거나
일이 있을 때면 으례 함께하곤 해서 친구라 여겼던 녀석이
업드리면 코닿을 곳에 있으면서도
내가 아파할 때 얼굴은 커녕 전화 한번 걸어주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나는 여태껏 한갖 이 녀석이 필요로 할 때만
있어주면 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씁쓸해 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를 친구로 생각했었다면

그런 무관심까지도 이해하고 포옹할 줄 알아야만 하는 것인지는......

그렇지 못한 내 그릇의 적음을 먼저 탓해야 하는 것인지는......



사람을 볼 줄 안다는 눈(目)이란
때로는 헛것을 볼 때도 있다는 것을,
헛것이 보일 때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나의 이런 착각이
단순한 내 자신의 지각상의 실수였기에
내게 있어선 또 하나의 상처로 남겨지는 순간입니다.

이런 상처를 또 다시 만들지 않게 하려면
사람을 보거나 평가하는 일에 있어
지금보다는 경솔하지 않아야 한다며
상처를 안은 내 자신을 스스로 다독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2007년 7월 10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