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1:30
(2007, 2, 8, 목요일 ) 월남전에 참전하셨던 나의 예비 매형께선 1969년 무렵 일본제 sanyo녹음기와 yasica카메라를 각각 한대씩 가지고 귀국하셨습니다. 당시에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한창 보급이 될 때였지만 소리를저장하고 다시 들을 수 있는 기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단히 신기한 물건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무렵 나의 누님과 예비 매형 사이엔 뗄래야 뗄 수 없을만큼 불꽃이 튀는 연애를 하고 있었지만 집안 어르신들의 반대가 만만찮아서 두사람의 결혼이 성사될 수 있을런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 내 입장에서는 염불은 마음에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속담처럼 두분이 결혼을 하든 연애를 하든 상관없이 오직 녹음기와 카메라에만 눈이 멀어져서 어떻게 하면 내 손에 넣을 수 있을까하고 잔머리만 굴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자 결국엔 안면몰수 하고 누님몰래 예비 매형께 편지를 쓰게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후 녹음기와 카메라를 누님을 통해서 건네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빌린 것이긴 해도 내 생전 처음으로 카메라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당시에 예비 매형의 입장에선 녹음기와 카메라를 내게 건네주며 백년하청(百年河淸)을 짐작이나 하고 계셨는지는 모를 일이나 두분이 결혼을 하여 조카들이 뛰어다닐 때까지 단물나게 썼으니 지금 생각하면 나도 왠만큼 염치가 없었나 봅니다. 세월이 흘러 1980년대 초, 그러니까 내가 신혼일 무렵 직장 동료와 사진을 함께 해보자 하여 아내의 양해도 얻지 않고 한달치 월급을 뚝 떼어 카메라를 구입하고서 새벽녘엔 해가 뜨는 동쪽으로 해질녘엔 해가 지는 서쪽으로 쫓아 다니다가 아이들이 둘이 될 무렵에서야 제 정신을 차리고서 그 짓을 접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남편에게 불만도 있었을 법 하건만 사진과 관련해선 단 한번도 불평을 하지않은 아내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경제적인 상황과 시간적인 여유가 발목을 잡는 통에 잠시만 접어두자는 생각으로 제 스스로 미뤄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기에서 전자로 시대가 바뀌자 카메라 또한 급속하게 아나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게 되었고 나 역시 일찌감치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해서 외출을 할 때면 제일먼저 카메라를 챙기곤 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구입한 지 5년째인 작년 여름, 아내 몰래 틈틈히 모아놓은 비상금으로 또 다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일안리플렉스 디지털 카메라, 줌렌즈 2개, 단렌즈 1개, 삼각대, 가방, 몇가지 필터....... 아내가 카메라와 각종 장비를 보며 모두 얼마주고 샀냐고 물어보길레 망설이지 않고 "50만원"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50만원이면 쓸만한 똑딱이 카메라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겠지만 모르는 척하며 넘어가 주는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년말 쯤 이삿짐을 정리할 무렵 큰애는 그동안 내가 쓰던 디지털 카메라를 챙겨가서 제 얼굴만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고, 둘째 녀석은 20여년 동안 잠을 재워놓았던 아나로그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흑백사진의 촬영에서 부터 인화까지 예전에 내가 했던 짓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나와 카메라의 인연을 맺기 시작한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사진에 관심은 있으나 소질이 없으니 내놓고 자랑할 만큼 좋은사진 한장 찍지 못했던 건 지극히 당연할 일입니다. 다만 한가지 내 삶을 살아오는 동안 없어선 안 될 좋은 친구였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그러다 보면 뒷걸음질 하던 소가 쥐를 잡는 격으로 괜찮은 사진 한장 쯤 건질 수도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