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56, 내 친구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1:11

( 2006년 4월 15일 토요일 )

몸은 피곤하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병을 앓았던 친구녀석,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 져서 가까이 접근하기조차 무서울 정도였던 녀석은
"마음을 편히 갖어라"라는 걱정스런 말 한마디에
"너는 의사도 아닌 놈이 쓰잘데기 없는 소리 마라!"며 쏘아부칠 때
적잖게 당황했던 3년 전의 일이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그 무렵 녀석은 직장을 휴직하고
병원에 입원을 해서 몇 개월동안 치료를 받고선
겨우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질 않기를 바랬으나
녀석에게서 어제 "사흘째 잠을 한숨도 못 잤다"는 전화를 받고 보니
갑자기 무엇에 얻어맞은 듯 어지럽습니다.

지난날의 끔찍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걱정도 되어서
"밤바람이라도 쐬러 나가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녀석은 하도 답답했던지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을 합니다.

아내에게 부랴부랴 휴대용 가스랜지와 양념을 챙기게 하고
녀석이 평소에 좋아하는 낙지 몇 마리를 사서
답답할 때면 혼자서 바람을 쐬러 가곤 했던
남평의 드들강변 소나무숲으로 달려 갔습니다.

해질녘 강바람이 아직은 차갑게 느껴지지만
솔밭에 부는 바람과 강여울을 흐르는 물소리의 어울림은
마음속의 무거운 것을 털어내고 씻겨내기에 충분합니다.

끓는 물에 적당히 익혀 낸 낙지 한마리를 맛있게 먹은 녀석이
기분좋은 듯 어두운 솔밭속을 걸어 다니며 몸을 푸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에
지난 겨울에 폭설로 부러져서 잘 마른 솔가지를 주워다 모닥불을 피웁니다.

솔가지 타는 향기와 더불어
여울을 흐르는 강물과 이름모를 산새의 울음소리와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묻혀서
풋보리를 구어먹던 일에서 부터 고구마에 얽힌 옛 이야기까지,
옛 고향에서의 까마득한 기억들을 새록새록 되새김질 하느라고
솔가지가 타고 뒤에 남은 숯불이 다 사그라진 뒤에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점심시간이 조금 지날 쯤
다섯시간이나 죽은 듯이 잠을 잘 잤다는 녀석의 전화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잠이란 삶을 재충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장 충실하게 치뤄야 할 생리현상임에도
피곤하면 잠을 자게 되어있는

그 쉬운 짓을 못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녀석이 안타깝습니다.

그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선
녀석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그런 일이 되풀이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실로 안타까울 일입니다.

피어난 듯 지는 벚꽃이 오는 봄을 반기는 듯 함박눈처럼 내리고
연두빛 여린 새싹들은 날이 갈 수록 푸르름을 더해가듯
연약하기만 한 녀석도 하루가 다르게 단단해지길 바라는 건
옆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