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1:10
( 2006년 4월 05일 수요일 ) 부지깽이를 거꾸로 꽂아놓아도 싹이 돋는다거나 날이 풀리기 시작해 논밭갈이가 시작된다는 청명입니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온갖 생명들이 잠에서 깨어나 제각기 몸집을 불리느라 여념이 없을 때지만 나는 뜻하지 않게 생겨났던 일에서 허우적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3월이 훌쩍 떠나가고 어느새 4월에 성큼 들어 서 있습니다. 십여일 전 자정이 가까워 오던 시간, 아닌 밤중에 홍두께라고 아무렇지도 않던 아내가 갑자기 목을 가누지도 못한 채 통증때문에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갑자기 당한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한참동안이나 안절부절만 할 뿐이었습니다. 앉아서 벽에 기댄 채 머리를 벽에 붙이고선 미동조차 못하고 눈물바람만 하고있는 아내를 어떻게든 병원으로 데려가야만 하는데 이럴 땐 아이들이라도 옆에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초저녁만 되었어도이웃의 도움을 청해야만 할 일이었으나 시간이 오밤중인지라 그럴수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119에 도움을 청했고 잠시후에 도착한 119 구급차로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MRI를 찍고 여러가지 검사를 한 결과 신경이나 목관절 등엔 이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아서 의사로 부터 "근육경련"이라는 설명과 함께 차츰 나아질 거라는 말을 들은 뒤에야 안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서너시간 쯤 흐른 뒤부터 차츰 미동을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며칠동안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은 효과가 있어 이젠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다시 얻어먹을 수 있게 되었으나 그날 그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가슴속에서 심장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점심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꾸벅꾸벅 졸며 단꿈까지 꾸고 있었는데 모초롬 시내를 나갔던 아내가 "차가 주저앉아 버렸다"고 전화를 해 옵니다. 20여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처음이나 지금이나 답답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새로 바꾼지 1년밖에 되지않은 새차가 주저앉을 일이 뭐가 있겠나 싶어서 '보험회사로 전화해서 도움을 받으라'고 해 놓고서 퇴근해서 보니 타이어에 못이 박혀 바람이 빠진 줄도 모르고 얼마나 돌아 다녔는지 바퀴가 갈기갈기 찢어져서 먼지털이가 되어있습니다. 평소에도 시동만 걸리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끌고 다니다 보니 승용차에 관해선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뒷처리는 언제나 내 몫으로 남겨지곤 해서 불만이 적지가 않습니다. 작년 가을 어느날 초저녁에 무단횡단하던 노인을 들이 받고선 난처하게 만들었던 일까지 더해서 아내를 책망하다가 말고 하도 심난해서 하늘을 쳐다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데 봄비가 내 맘을 아는지 달아올라 뜨거워진 얼굴을 식혀줍니다. 이런 내 눈치를 살피며 멋적어 하는 아내가 가엾어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긴장을 하며 살면 좋으련만...."하는 말 한마디로 덮어둘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청명이라고 해서 늘 맑은 날이 아니듯 사노라면 심난스러운 일들이 겹칠 때가 더러 있었노라 여기며 이 비가 개고 난 뒤에 있을 화창한 봄날을 미리 그려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