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45, 새끼손가락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0:53

( 2005년 7월 15일 금요일 )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봤던 달이
초저녁 먹구름 사이로 빼꼼히 내밀었다가 금새 숨어버리고 맙니다.
그러고 보면 장마도 어느덧 뒤끝이라
새로 생겨난 초생달을 보는 느낌은 어느 때보다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비록 올 장마가 조용히 머물다가 물러가서 다행스러울 일이긴 해도
내 자신은 어느 해 보다 더 지리한 나날이었기에
그 뒤끝에 서 있는 느낌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장마가 시작되기 훨씬 전인 지난 6월초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왼쪽 새끼 손가락 인대가 끊어져 잇는 수술을 하고
퇴원 후엔 통원치료를 하며 나날을 보내다 보니
장마에 비가 왔는지 바람이 불었는지 또렷한 기억조차 없습니다.

상처를 꿰메 놓았던 실과 손가락에 박아놓은 철심만 빼면 될 것으로 생각해서
그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으나
철심을 빼고난 뒤에도 얼마동안은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니
철심이 박혀있든 빼냈든 심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때 친구들이랑 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하는데 말고는

다른 손가락에 비해 자주써먹지 않아서

"하차잖은 새끼손가락"이라며 가볍게 생각했던적은단 한번도 없었지만

으레붙어있어야 하는 걸로여기던 손가락에상처를 입고보니

몸에 있는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철심을 뺀 손가락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문지르고 조심스레 구부리며 재활운동을 하다보니
뻗뻗하게 굳어있던 마디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여
지금은 원래의 반 정도를 굽힐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펴고 굽힐 수 있으리라는나의 기대가

바램으로 그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몸뚱아리 중에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 있었다면
그게 바로 잘 생긴 새끼손가락이었는데,
이젠 칼맞아 덕지덕지 꼬멘 후크선장의 흉칙한 얼굴처럼 되어버려서

안쓰러움과 아쉬움이 적지가 않습니다.

철심을 빼낸지도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겨우 한달동안의 일을 겪으면서
크고작은 상처로 몸에 곧은 철심을 박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고 말하면
경솔하거나 시건방질 일일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四字小學의 효행편에 있는 어귀
體髮膚 受之父母(신체발부 수지부모)
不敢毁傷 孝之始也(불감훼상 효지시야)
(신체의 모든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니
훼손하거나 다치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를 들먹이지 않더래도
일생을 살면서 몸에 칼을 대거나 바늘로 꼬메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풍우는 늘 장마뒤에 몰려와 방심하고 있던 들녘을 헤집어놓곤 했던 터라
장마가 지나갔다고 해서 마음놓을 일은 아닙니다.
인대를 잇고 나서 재활치료를 하다가
다시 끊어져서 더 큰 고통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