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44, 꽃과 향기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0:52

( 2005년 5월 25일 수요일 )

화려하든 단아하든

향기가 있든 없든 또 짙든 옅든,
들꽃이건 화초건 간에
이 세상에 피어나는 꽃이라면 아름답지 않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하차잖은 풀꽃 중에
사람의 발길에 짙뭉게지는 걸 더 즐기는 듯 질기게 꽃대를 올리는 질경이도,
어느 무덤에서 까만 씨앗을 촘촘히 붙인꽃대를 뾰족히 올리는 잔디도,
아침이면 알알이 이슬방울을 맺혀놓은 채
수정처럼 아름답게 반짝거리며 나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꽃을 피워
저 마다의 독특한 향기로 벌과 나비를 불러 들여서
수정을 받고 꿀을 내 주는 상호교류의 과정이
자기의 종족번식을 위한 일상적인 행위라고는 하지만
피고 지는 순간의 아름다운 자태와
고운 향기를 느끼는 순간만큼은
꽃과 내가 하나가 되는 느낌입니다.

예전에 꽤나 오랫동안 축농증으로 고생을 하면서
아름다운 꽃향기는 물론
진한 커피향과 매케한 담배연기까지도 전혀 맡지 못한 채
거의 10여년 이상을 그렇게 답답하게 살 무렵엔
향기를 맏고 싶을 땐 두눈을 감고 예전해 기억하고 있던 향기를 상상하는 일이
내가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 시절 유채꽃이 피어날 무렵이면
온 들녘에 가득했던 유채꽃 향기가 그리워
유채밭을 지나면서도 예전에 기억속에 머물던 향기를 회상하며
눈을 감아야만 했었습니다.

몸에 칼을 대는 게 겁이 나

코가 아닌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할 때에 이르러서야 수술을 하게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차츰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된 이후부턴
꽃이 있는 곳에서 만큼은 향기를 느끼려 눈을 감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곤 하지만
내가 맡을 수 있는 꽃 향기는
조금 짙은 향기거나 홀로가 아닌 아카시아, 때죽, 찔레꽃 등의
무리가 지어 피어나는 꽃들의 향기 뿐입니다.

산길에서 언뜻언뜻 코끝에 가느다란 꽃향기가 와 닿을 때면
나는 항상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향기가 어떤 꽃에서 풍겨나오는지
숲속 깊은 곳까지라도 들어가 두리번거리곤 합니다.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 중에서 꽃냄새 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 중에 5월이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찔레꽃을 만날 때마다
나는 버릇처럼 눈을 감고 코를 들이대며
조금이라도 더 짙은 향기를 맡으려고 킁킁거리곤 합니다.

눈을 감고 코끝으로 맡는 찔레꽃 향기속엔
내 어머님과 어머님께서 만들어 주시던 찔레꽃 개떡과
병약한 내 어린시절들의 아픈 기억들이 물씬 베어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이나 산에 가면 제일먼저 만날 수 있는 찔레꽃이지만
이른 아침이라
성급한 마음에 두눈을 지그시 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