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0:48
( 2005년 4월 26일 화요일 ) 꽤나 여러 해 동안 써 오던 일기를 어느날 갑자기 뚝 끊어버렸던 일이 있습니다.
일기를 쓰는 이유중에 하나는 무거운 일을 마음으로 부터 털어버리고자 함이었으나 털어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채곡 채곡 쌓여있음을 깨닫고서 부터입니다. 무거운 일들에 대한 기록들을 지우고, 부끄러운 기억들도 지우고, 심난했던 부분들에 대한 기록들도 지워서 열권이 넘은 일기를 3.5인치 플로피 디스켓 한장에 담아 놓고는 모두 불살라 버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열권이라는 기록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고 태워버린다 해서 내 안에 남아있는 것 까지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잊어버리면 좋을 일들에 대해 되새김질 하는 일은 하지않게 되어서 차라리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통신수단이 다양화되어편지를 쓰는 일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 때면 써 놓은 편지를 그냥 보내지 않고 하루쯤 묵혔다가 보내곤 했습니다.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 편지를 쓰다가 보면 간혹 절재되지 못한 감정들이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그럴 경우엔 읽는 이의 심사까지도 어지럽힐 일이라서 부치기 전에꼭 한번은읽어봐야만 할 일입니다. 일상 뿐만 아니라 편지에서도 타인에게 무거운 속마음을 내 비치고 난 뒤엔 상대방에게 짐을 얹혀놓은 것 같아서 미안스러워하곤 합니다. 그런 이유로 편지를 쓸 때면 내 자신을 다 표현할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며 때론 허물을 덮거나 감추려고 포장을 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가끔은 마음에 없는 이야기도 하거나 작은 걸 몇 배 부풀리기도 하고 큰 것을 아주작게 만들때도 있습니다.
편지와 일기는 기본적으로 의사의 전달과 일상에 대한 반성이란 점에서 서로 비교의 대상은 될 수 없으나 내 자신의 심사를 새겨넣는 부분에 있어선 비슷한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기란 아무에게도 보여질 일이 없기에 정직할 수 있는 반면에 무거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고, 편지란 누군가에게 읽혀질 일이라 가식과 포장과 꾸밈이 상투적으로 이뤄지는 반면에 무거워지지 않는 장점도 있습니다. 편지가 일기보다 좋은 것이 또있다면 보내고 난 뒤에 어김없이 시작되는 일입니다. '기다림'이라는 막연한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