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41, 농사와 인생철학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0:47

( 2005년 4월 25일 월요일 )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힘들 땐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지으며 살겠다"라고 말들을 하곤 합니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전원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농삿일에 있어 필연적인 육체적 고단함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하는 까닭입니다.

사람들은 가끔씩
흙 냄새를 맡고 싶어서,
또는 식구들이 먹는 채소 만큼은 직접 길러 먹고 싶어서
인근에 땅 몇 평씩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일구곤 합니다.

그러나 처음엔 온 식구들과 함께 나가 열심히 일구러 다니다가
차츰 땡볕에서 땀을 흘리는데 익숙치 않은 아이들이 따라나서길 꺼려하게 되고
나중엔 혼자 다니며 잡초에 밀리고 병충해에 심난해 하고 비바람에 속상해 하다
끝내는 포기하고 마는 경우를 흔히 보곤 합니다.

겨우 땅 몇평을 일구면서
'인생은 고단하다'는 심오한 철학까지도 깨닫는 순간이니
따지고 보면 땅 몇 평 분양받을 때 지출한 돈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더 큰 소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농촌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일지래도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과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막상 일을 해 보면

농삿일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흙은 정직해서 땀을 흘린만큼 댓가를 보상해 준다곤 하지만
잡초와의 전쟁에서 이겨야만 하고
병충해와 비바람에도 버텨내야만 가능해서
농삿일이 세상살이의 어떤 일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 몇년동안 밭떼기 몇 평을 일구면서 실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감자와 고구마를 심기 위해 남겨놓은 이랑에 비닐씌우기 작업을 하려는데
바람이 불어서 쉽지가 않습니다.
비닐을 씌우는 이유는
잡초가 돋아나지 않게하고 가뭄이나 장마에도 잘 견뎌낼 수 있게하기 위함인데
작업을 해야 할 이랑이 많지가 않아 가볍게 생각하고 마실 물도 챙겨오지 않았으나
일을 하다보니 침이 바싹 마르고 목이 탑니다.

이럴 때 누군가가 있어 비닐이라도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차피 혼자서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온 이상
일이 있다며 따라나서 주질 않은 아내에게 서운해 할 일만은 아닙니다.

일상에서 가끔 느끼는 고단함은
육체적으로 힘들 때만은 아닙니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거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리면서도
마음 한켠에선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서 심난해 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누군가 함께 있는 일이란 잠시 뿐이며
언젠가는 홀로 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힘들어 하곤 합니다.

서로가 필요에 의해서 함께하는 일도
그 의미가 상실되거나 또는 서로에게 불편해질 땐
언제든 혼자 남겨지거나 혼자 남아야 한다는 걸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야 함에도
그리 못해서 더 힘들어 하곤 합니다.

그래서 나는 늘 세상을 달관한 듯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닮고 싶어서 나름대론 흉내를 내 보지만
아직 깨달음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 탓에
아직까지는 어림없는 짓입니다.

문제는
내일이라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차잖은 비닐 몇 줄 씌우면서

인생까지 들먹거림은

너무 거창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