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39, 고사리나물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0:45
    ( 2005년 4월 20일 수요일 )일기예보엔 비가 온 뒤끝에 짙은 황사가 있을 거라 했지만아직까지는 비개인 뒤의 화창한 봄날의 아침입니다.고향에서 함께 자랐던 친구가 며칠 전에비가 갠 뒤엔 고사리를 꺾으러 가겠다길레"감방산 고사리는 내가 심어놓았으니 꺾어와도 반은 내 몫"이라 농담을 하며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고향마을의 동쪽엔내 어릴적 추억거리가 아주 많이 새겨져 있는감방산이라 불리우는 그리 높지않은 산이 있습니다.산새들이 보금자리를 틀어 새끼를 기르고아이들이 소를 끌고 가 풀을 뜯기며 하루해를 보내며 놀던 산엔봄이면 제법 많은 고사리가 돋아나곤 해서고향에 가는 날엔 잠시 짬을 내어 고사리를 꺾어오곤 했습니다.
( 1974년 내 고향과 감방산 )
    그러나 아내와 함께 갈 때면나는 하나라도 더 꺾으려고 비지땀을 흘리며 부지런을 떠는데도아내는 소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어슬렁거리다 보니결국엔 아내가 꺾은 것은 내것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따지고 보면 네 식구 중에 누구보다 나물을 좋아하는 자신이라서하나라도 더 꺾으려는 건 당연한 일이며베낭의 무게가 느껴질 수록 흡족해 하지만집에 돌아와서 얼마 후면 어김없이 부피가 반으로 줄고 맙니다.하차잖은 나물 몇 가닥을 이웃과 나눠먹겠다는 아내를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나수고한 사람은 따로있고 생색을 내는 건 아내의 몫이라서나눠주는 이의 마음만큼 즐겁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요즘엔 길거리에 나온 고사리나물을 보거나그걸 사 와서 조기찌게라도 끓일 때면 고사리 꺾으러 안 갈거냐고 다그치지만고향에 볼 일이 있다면 모를 일이나고사리를 꺾기 위해서 일부러 가는 일이라면농사일에 바쁠 고향사람들에게 미안할 일이라서 썩 내키지가 않습니다. 한편으론 주변에 있는 산을 다니며산길 어디쯤에 어떤 들꽃이 피어나는지 훤히 꿰뚫고 있으면서도 고사리가 많이 돋아나는 자리 하나 봐두질 않았던 것은 문제가 있지만누가 뭐래도 고향땅에서 내 손으로 꺾어온 나물이라야 만맛도 느낌도 제격임엔 틀림이 없습니다.봄비가 촉촉히 내린 다음날이면고사리가 하룻밤새 쏙쏙 올라오는 날인데석양무렵엔 친구한테 전화나 해 볼 생각입니다.꺾어온 고사리를 혼자 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물어보고 싶어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