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34, 산으로 가는 이유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0:40

( 2005년 3월 05일 토요일 )

초저녁 퇴근길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보며
내일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조계산으로 갈 생각하며 돌아왔으나
아침에 깨어 밖을 내어다 보니 춘설이 소복히 덮혀있습니다.

일찍 동면에서 깨어난 생명들이 화들짝 놀라움추리기야 하겠지만

눈덮힌 산이야 말로내가 늘동경하던세계라서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으로 향하는 길이 춘설로 막히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베란다로 오가며 밖을 내다보곤 합니다.

그렇잖아도 어제는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길레
여기에도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바램을 하면서도
맑개 갠 밤하늘을 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이뤘건만
눈이 하얗게 덮히고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있는 새벽풍경을 보며
반가움과 걱정이 뒤엉켜 혼란스럽습니다.

조계산 산행은 송광사 코스든 선암사 코스든 상관하지 않고
편하게 오르내리곤 했던 산이지만
몇 해 전에 한 동화작가가 작고하신 뒤론
그분께서 늘 마음을 두고 계셨던 선암사쪽 코스를 택하곤 합니다.

어떤 산이든,
산에 눈이 하얗게 덮혀있든,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든
산행하는 시간들만큼은 평소 털어내기 쉽잖은 잡념들 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곤 해서
틈이 있고 또 비만 오지않는다면 산으로 향하곤 합니다.

평일엔 직장에,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휴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산으로 가다보니
내 일상의 이야기에 산 이야기는 단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과 가정사와 세상사를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좋을 일이고 더 재미있습니다.

헐떡거리며 힘들게 오르는 일은
정상에 올라 설 때의 성취감만 아니라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집에서 나설 때 챙겨간 물을 두고
계곡에 흐르는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간혹 라디오를 켜고 다니는 산객을 만날 땐 심사가 뒤틀리긴 해도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와
흙냄새와 들꽃향기에 취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비만 오지않는다면,
꼭 해야 할 일만 없다면
휴일이면 어김없이 산으로 가는 이유입니다.

이제 짐을 챙겨야 할 시간입니다.

물병과 커피 한 봉지와 사과 한 알,
가는 길에 김밥도 한 줄.........,

오늘같은 춘설에

마음놓고푹 꼬구라져봐도 좋으련만

남들보다 큰 덩치라서

넘어질 때우수게 거리가 되는 게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기에

아이젠만큼은 꼭 챙겨가야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