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23, 여름과 나의 삶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0:28

(2004년 7월 31일)

장마가 끝나자 마자 시작된 찌는 듯한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립니다.
여느해 같으면 밤낮없이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 밤잠까지도 설치게 할 때이건만
요즈음엔 그놈들도 더위에 지친 듯 울음소리에 맥이 빠져 흐느적거리고 있습니다.

5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4계절 중에 여름나기가 제일 쉽지않았던 것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달려드는 모기에게 시달림이 적잖은 탓도 있지만
수은주의 변화에 정비례해서 날카로워진 신경은
내 의식속에서 이성 보다는 본성을 늘 더 앞세워 놓곤 하므로써
내 의지에 반한 심난스러운 일상이 되풀이 되곤했기 때문입니다.

본능을 제어하는 이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한 초연한 삶을 영위케 하는 것이 지혜라 한다면
지혜의 높낮이는 개개인의 수양의 정도에 따름일진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이유를 수양부족과 지혜없음이 아닌
날씨탓으로 돌리곤 하는 뻔뻔한 짓도 서슴치 않게 하는 때가
바로 이 여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10년만의 더위라는 말이 아니더래도

1994년 그 해 여름이 생생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베란다의 온도계가 연일 38도를 넘나들던 무더위 탓도 있었지만
이해할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냥 넘길 수 있었던 속상한 일들에 대해서
많이도 짜증을 내며 피곤함을 스스로 자초했던 나날들이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올 여름이 그 해 여름만큼 무더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장마가 끝나 무더위가 시작된 지 10일도 채 지나니 않았고
앞으로 20여일은 무더위가 계속될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불유쾌한 감정들이 헝클어져 어지러운 심사 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그해 여름보다 시끄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나간 여름들과 쌓인 연륜이
내 안의 감정을 감추며 삭히며 다독거릴 줄 아는 방법을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 심사 편하게 다스리는 방법 하나 깨우치는데 10년이고 보면
내 안에 있는 욕심 털어내고서 용서하며 베풀고 나눠줄 줄 아는 크나큰 깨달음은
학처럼 천년을 산다고 해도 내게 있어선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내 자신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필이면 지리산 종주산행을떠나려 했던 날에 태풍이 올 거라니
무뎌졌던 심사가 다시 예리하게 날을 세웁니다.
아무래도 "하늘의 뜻이려니" 하며

나를 다독거리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희망과 사랑과 평화와 건강과 행복한 8월 맞으시길 빕니다.

2004년 7월의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