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22, 가을걷이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0:27

( 2004년 9월 02일 목요일 )

며칠전에 참깨를 베다가 귀에 벌을 쐰 적이 있습니다.
비록 하차잖은 작은 침이 살갖의 겉을 쑤시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순간의 통증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벌침이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맞는다는 소린 들었지만
아무곳에나 쑤셔도 효과가 있을런지는 모를 일이고
쏘일 때의 통증이 차츰 가렵기 시작하니 적잖게 신경이 쓰입니다.

어렸을 적에 벌을 쏘여 본 적이 여러번 있었는데
십중팔구는 얼굴을 공격하는 통에
쏘인자리가 두툼하게 부어올라 놀림감이 되곤 했었으나
이놈은 조준을 잘 못 했던 것인지 귓바퀴에 침을 놓습니다.

벌은침이 빠지면 곧장 죽게 되므로써 침은 곧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녀석한테 위협이라도 될만한 행동을 했다면 또 모를 일이나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데만 온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한테
갑자기 침을 꼽아놓고는 제 스스로 생명줄을 끊어버리니 황당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여름날 내내 부지런히일해서겨울에 먹기 위해 모아놓은 꿀을

값싼설탕으로 바꿔치기를했던 벌통주인으로 착각하여

목숨을 바쳐 응징을 하려 했던것은 아닌가 하고 추측만 할 뿐

진짜 이유는알 도리가 없습니다.

지난 봄날 직장생활에 얽메어 있으면서도
틈이 생길 때마다 친구와 밭에 나가 참깨를 심고
잡초와 씨름을 하면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가을을 맞았지만
날씨가 도와준 덕에 그런대로 풍작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부모님께서 농삿일을 하시는 걸 보고 자라며
가끔씩은 직접 손을 보태기도 해서 농삿일이 낮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땅에 단감나무를 심어놓고
7년여 동안 휴일엔 거의 밭으로 출근했던 적도 있어
그 때 그 일보다는 쉬울거라 여기고 시작을 했으나
막상 하고 보니 참깨농사가 더 힘들게 느껴졌던 이유는 나이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시작해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한 낮까지
친구의 부인과 내 아내, 셋이서 참깨를 털었으나
두집이 나눠서 자루에 담아놓고 보니 잘된 농사치곤 수확량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습니다.

털어서 자루에 담기 전까지만 해도
형님네와 누님네와 동생들과 처가와 친구들까지 나눠먹을려고 미리 몫을 지어놨으나
그 몫에서 조금씩 덜어내야 할 생각을 하니 조금은 서운한 느낌은 들지만
한편으론 무사히 가을걷이까지 끝낸데 대한 보람은 작지가 않습니다.

예전에 부모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봄에 하는 들일은 일의 시작이며 벌려놓는 일이라 더 힘이 드나
가을일은 마무리하고 그릇에 담는 일이라서
봄일보다 훨씬 수월하고 보람도 크다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9월이라서 그런지 조석으론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긴해도
아직도 한 낮은 한 여름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동안 밭에 참깨를 심어놓고 무수히 자라나는 잡초와 씨름을 하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면 쓰러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여름이었으나
이젠 마음편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마음의 여유도 좀 생겨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올핸 여름과 겨울이 긴 반면에
가을은 짧겠다는 기상예보에 불만스럽기만 합니다.
특별하게 좋은 일이 있을 가을도 아니지만
봄, 여름, 겨울보다는 늘 더 좋았던 계절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