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0:13
    ( 2004년 4월 29일 목요일 )봄이면 불붙은 듯 피어난 계량종 철쭉꽃을 바라볼 때마다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위적으로 채색되어진 형형색색의 꽃이산천초목이 아닌 콘크리트벽, 돌담 사이에 쏟아 부어놓은 듯 하여철쭉에 대한 이미지가 알게 모르게 천박해져버린 느낌입니다. 그러나 솔밭사이 오솔길이나 산등성이에서탐스럽게 피어난 철쭉을 만날 때면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까마득히 잊어버리고내가 좋아하는 색갈 연초록의 잎사귀 사이사이로 피어난 아름다운 꽃의 자태에 흠뻑 빠지곤 합니다.철쭉 뿐만 아니라 흔하디 흔한 찔레꽃이든 돌틈에 피어나는 제비꽃이든 산과 들에 피어나는 들꽃들은내 마음을 붙잡아 놓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들꽃을 만날 때마다 눈길 주지않고선 그냥 지나치질 못합니다. 광양의 백운산에도, 보성의 제암산에도, 장흥의 일림산에도철쭉이 피어 온 산을 붉게 물들여 놓았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화무십일홍이라는데 이번주엔 철쭉이 능선에 가득 피어나는 일림산엘 먼저 갈 것인지,등산도 할겸 갖가지 꽃이 함께 피어나는 백운산으로 갈 것인지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혼자서 느긋하게 다녀오곤 하는 가까운 무등산이라면 또 모를 일일까멀리 있어서 혼자 가기엔 얼른 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혼일 무렵 처가의 대문곁엔 꽃은 야생과 꼭 닮았으면서도 크기는 두어배쯤이나 크게 피는 해묵은 철쭉 한 그루가 있었는데집수리를 할 때 파헤쳐져 쓰레기차에 실려가기 직전에 발견하곤 밑둥치만 다듬어 가져와 분에 심어놓고 십 수년째 키우다 보니 살려준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해마다 꽃을 예쁘게 피워주고 있습니다.그러나 나는 어느때부턴가 이 철쭉의 생리를 악용하여서리가 내릴무렵 아파트 밖 응달에 한달쯤 내 놓아 겨울잠을 일찍 재운 뒤 다시 따뜻한 거실로 들여놓게 되면밖은 추운 겨울임데도 봄이 온 줄 알고 활짝 꽃을 피우게 하는 못된 짓을 해마다 되풀이 해 왔습니다.그렇게 하는 것 만으로도 부족하여 따뜻한 곳에선 꽃을 오래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라화려한 자태를 잃지 못하도록 거실이 아닌 베란다로 내 놓고엄동설한에도 꽃을 보는 재미로 나날을 보내다 겨울이 끝날 무렵에야 비로소 베란다 문을 열어서 깊은 동면으로 들어가게 하곤 하다보니적잖은 시달림이었을텐데도 다행스레 잘 견뎌주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충분하고 편안한 잠을 자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이라해마다 잠을 설치게 한 미안함이 적지가 않아작년 초가을무렵 시골 누님네 정원에 심어놓고 겨울을 나게 했는데올 봄엔 집에서 피운 꽃보다 훨씬 색갈도 곱고 탐스러운 꽃을 피웠습니다.기왕 그곳에 옮겨놨으니2~3년 쯤은 그곳에서 살게 할 생각이지만다시 옮겨 오더래도 앞으론 그런 짓은 하지 않을 마음인 것은집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이 철쭉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들에 핀 꽃이라 해서 더 귀하게 여기고집 언저리에 핀다해서 구박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편협하기 짝이없는 나 혼자만의 잘못된 생각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