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11, 36년만의 만남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10:12
( 2004년 4월 09일 금요일 ) 약속장소까지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보다 한시간쯤 여유를 두고 미리 출발했던 이유는 가는 길에 잠시 부모님 산소를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갈 수 있는 고향이나 반겨 맞아 줄 사람도 특별히 가야 할 일도 없다 보니 명절 무렵 벌초나 성묘 말고는 부모님 산소 조차 들여다 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예전 이맘때 쯤이면 사계절 어느때건 빈 밭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농작물로 가득했었고 봄이오면 유채꽃과 향기로 가득한 고향이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외국의 값싼 농산물에 밀려 자취도 없어지고 빈 밭마다 빨간 황토가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삭막한 풍경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만 더하는 고향입니다. 오늘은 어렸을 적에 6년동안 한 교실에서 지냈던 여자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날인데 헤어진지 36년만의 만남이라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만나게 되면 금방 알아 볼 수나 있을런지 어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기분이 상기되어 차분하지가 못합니다. 6년동안 한 교실에서 함께 지냈다곤 하지만 한번도 그들과 짝꿍이 되어 함께 앉아 본 적도 없고 그들과 나 사이에 특별히 기억할만한 일도 없었기에 옛 모습에 대한 기억이나마 희미하게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스러울 일입니다. 목포는 내 어릴적에 큰 병치레를 하면서 어머님과 병원에 자주 다녔던 일도 있었고 사회생활의 첫 출발을 이 도시의 어디쯤에서 할 무렵 섬에서 자란 순박한 아가씨와 부끄러운 사연도 잠시 있었던지라 내게 있어서 이 도시는 새생명을 준 도시요 애틋한 추억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탈바꿈을 하는 탓에 가끔씩 올 때마다 낮설고 생경스러울 따름이었으나 오늘은 옛 친구들을 만나는 일 때문인지 자꾸만 상기되는 마음만애써다독거리곤 합니다. 약속된 장소인 시외버스터미널에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던 유난히 볼이 빨갛던 옛 모습이 그대로인 친구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친구는 반에서 제일 작은 아이들 축에 끼었었는데 여전히 키가 작고 얼굴모습은 그대로이나잔주름이 많이 앉아있는 모습에서 흘려보낸 36년이란 긴 세월을 실감하며 남녀가 유별한데도 남의 시선 의식하지도 않고 세사람은 백주대로에 서로 부등켜 안고 만남을 기뻐했습니다. 6년동안의 학교 시절이라면 어림도 없을 일을 36년만에 만나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온 몸으로 반기며 맞아주는 친구들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옛 친구들을 만날 때면 당시에 함께 지냈던 친구들 소식과 옛 이야기는 물론 고향 이야기는 빠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 추억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없이 반갑고 즐거울 일이었습니다. 내가 손님이라며 한사코 찻값과 밥값을 치루고야 마는 친구들과 두어시간 남짓 함께하는 동안 하고싶은 이야기 다 하지 못하고 남겨놓은 뜻은 이제부턴 오가는 길에 자주 만나며 살자는 앞날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타향만큼 낮설어진 나의 옛 고향도 36년만에 만났던 친구들의 마음만큼이나 그렇게 포근하고 떠나오려는나를잡아주던 친구들의 손만큼이나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허전한 날엔 다시 오겠다'며 친구들에게약속했던 것 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고향을그리워하거나 찾아 올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