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섣달보름
섣달 보름,
절기로는 小寒입니다.
도시에서 또는 가끔씩 시골에서 보는 달빛이 아무리 맑고 곱다한들
내 어릴적 고향에서 보던 달빛과 비교할 수도 없어서 늘 아쉬워하곤 합니다.
아내는 군것질을 즐기는 남편을 위해 가끔씩 고구마를 사 오지만
내 고향 황토밭에서 캐 낸 밤고구마 맛이 아니라서
먹을 때마다 "요즘 고구마 맛이 왜 이래?"라고 한마디씩 하곤 합니다.
2~30대 까지만 해도 텔레비죤의 어떤 프로그렘 보다
코메디 프로를 즐겨 볼 때가 있었으나
요즘엔 왠지 유치하게 느껴지곤 해서 다른 체널로 돌리곤 합니다.
가끔씩 혼자서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중천에 떠 있는 둥근 보름달도 예전에 봤던 달이고
고구마 역시 품종개량으로 당도가 더 높아 달콤할 것이며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지금은 내 딸과 아들이 즐겨보는 프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게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들은
나의 세상살이가 무미건조 해 짐이요,
혀의 촉감이 둔해 졌음이요,
익살마져 포옹할 수 없을만큼 내 가슴이 좁아진 탓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며
변화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말하는 것 처럼
나 역시 그 말에 꿰맞춰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며 살아 왔습니다.
지난 한햇동안 특별히 얻은 것도 이뤄낸 것도 없지만
다만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고 훼손하고 상실해 가는 과정에 있는 자신을
뒤늦게 나마 발견한 일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맑고 고운 달빛에 예전처럼 흠뻑 젖을 줄 아는,
고구마 한톨에 베어있는 달콤한 맛을 혀로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의 익살에 함께 박장대소 하며
이제부턴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찿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섣달 보름의 달빛이
초저녁보다 얼마나 더 고와졌는지
밖에 나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