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09:56

( 2003, 12, 11 )

해마다 어김없이 겨울이 오고
때론 지겨울만큼 눈도 내리곤 하지만
첫눈만큼은언제나 반가움입니다.

그런 마음은 내가 아이일 때도 그랬고
사춘기 소년일 때도 그랬고
세상살이가 바쁘고 고달플 때도 그랬으며
지천명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어제 이른 새벽엔
올 겨울들어서 처음으로 탐스럽게 내리는 몇 방울의 눈을 봤습니다.

첫눈을 '몇 방울의 눈'이라 하는 뜻은
첫눈은 함박눈이어야 하고 소복히 쌓였으면 하는 바램인데도
그 "몇 방울의 눈"이 내려앉은 자리엔 희미한 얼룩만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아직은 어두움이 채 걷히지 않은 창밖을 통해서 기웃거려 보지만
밝아오는 새벽빛에 지지못한 별이 점차 빛을 잃어가는 하늘만 보입니다.
올 겨울의 첫눈은 그랬습니다.

봄의 꽃, 여름의 실록, 가을의 단풍, 겨울의 눈......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자연현상이라지만
계절마다 처음 맞이하는 것들에 대한 느낌은
한결같이 생경하기만 합니다.

시린 손 호호불며 눈덩이를 굴리던 코흘리게 시절의 純白의 눈(雪)과,
가을걷이를 채 끝내지 못한 들녘에 시름 가득한 농부의 謹心의 눈(雪)과,
지금은, 윤기나는 머릿가락을 하얗게 바래는 무심한 세월의 눈(雪)이긴 해도,
첫눈이 내려 하얗게 덮혀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내가 살았던 혼탁한 세상에서 벗어나와
아주 평화롭기만 한 전혀다른 세상에 와 있는느낌입니다.

비록
아침 햇살에 힘없이 녹아내리거나
사람들에 짓밟혀 질퍽거리며추하게 변해버릴지라도
이 순간이 좋으면 그 뿐
뒷일까지 생각하며 미리 걱정 할 일은 아닙니다.

어릴적에도 그랬듯이
지금까지도
첫눈은 함박눈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하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