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95, 단풍구경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09:53

2003년 11월 03일 월요일

지난 토요일 오후엔 친구내외와 함께 무등산 단풍구경 겸
짧은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해가 짧은 계절의 오후라서 시간도 넉넉치 않았음은 물론
친구를 포함해서 함께 간 두 아낙들도 등산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서
짧은 길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각자에게 있었던 셈입니다.

정상부근에 단풍이 시작될 무렵에 산엘 갔다가 온 뒤론
그동안 여러가지 사정으로 가지 못했었는데
윗쪽으론 어느새 잎을 다 뛀궈낸 나무들이 겨울 채비를 끝내고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빛으로 또는 색갈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봄이 시작될 무렵엔 산 아래로 부터 회색빛을 몰고 올라갔던 초록빛이
가을엔 위에서 부터 붉은빛에 쫓겨내려오고
그 뒤엔 회색빛이 뒤를 따라 내려와 자리를 차지하는 그런 풍경을 말입니다.

단풍이 물들어 있는 풍경들 바라보며

예전의 '곱다' 또는 '아름답다'라는 느낌에서

'쫓겨 내려온다'거나 '밀려 내려온다'라는 의식의 변화는

나이들어 감에 있어 자연스러운 변화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에선 이처럼 오르고 내리는 일 만큼은 자연의 섭리이자
등산을 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도 필연이라 여깁니다.
사람들은 "죽을 힘을 다해서 산에 오른다"라고 말들을 하지만
오르면서 내려올 힘까지도 다 써버리지는 않습니다.

석양빛에 단풍이 더 고운 건
내려올 수 있을 힘만 남긴 채
마지막까지 제 할일을 다 하려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무심한 소슬바람에 스르륵 생의 끈을 풀어놓는 낙엽들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뒷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는 것 처럼
내 인생 또한 고운 단풍잎처럼
그렇게 아름다웠으면 하는 마음속 바램도 해 봅니다.

짧은 산길이라지만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을 무렵에야 하산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혼자 내려올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행, 동행......어떤 땐 눈과 손과 발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어떤 땐 무거운 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만,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든든하다면
그걸로 족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