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내 누님과 단감
( 2003년 10월 31일 금요일 )
해마다 이맘때 며칠쯤은
고향에 계시는 누님네 단감수확을 돕기위해 내려가곤 했으나
올핸 단 하루도 내려가질 못한 탓에
누님 뵈러 갈려하니죄를 지은 사람마냥 발길이 무겁습니다.
일을 도와드리진 못 했으나
일하는데 들여다 보는 것만이라도해야 할 것 같아서
오늘은 서둘러 퇴근을 하고 고향에다녀 왔습니다.
마음 한번 먹고나면 금새 고향인 것을
매형을 먼저 떠나보내시고 홀로 감나무 농사를 짓는 누님이기에
자투리 시간이라도 쪼갠다면 몇 번은 들여다 봤을 테지만
틈이 있으면 산으로 돌아다니는데만 급급해 하고선
때를 넘기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합니다.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한결같이 이런 후회 뿐입니다.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뛰어넘으려 하지 말고 돌아왔어야 했는데.........
해가 뜨고 지고, 또 계절이 오가는 길목에 서서
시간은결코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이런 후회는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으나,
올 핸 그런 생각이 유난히 더 짙게 느껴짐은
내 나이가 한 몫을 거들고 있기 때문일거라 여깁니다.
늦게 핀 코스모스꽃이
파란 가을 하늘빛에 애처러움만 더 하고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들녘엔 허수아비만 덩그러니 서 있어서
외롭고 쓸쓸함이 짙게 느껴지는데
불어오는 바람끝의 차가움에 이제 겨울도 멀지 않았습니다.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짓느라 고생을 하신 누님께서
오는겨울만큼은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올 때 누님께서 차의 트렁크에 가득 실어 주셨던 단감을
사양 못하고 모두 가져다 놓긴 했으나
감 하나를 깎아 먹을 때마다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그나마 올 핸 감값이 다른 해보다 좋아서
일을 하면서도 보람이 있었다는 말씀에 다행스러울 일이긴 해도
일손 한번 보태지 않은 채 거저 먹는다는 생각때문입니다.
오늘은 가까이에 사는 친구들한테
단감 몇 개씩 보내며 생색이나 낼 계획이지만
이 말 한마디 만큼은 꼭 할 생각입니다.
내 누님께서 힘들게 농사를 지어 보내주신 감이니
내 누님 생각하며 먹어야만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