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09:50
( 2003년 10월 12일 일요일 ) 오늘은 오래 전부터 친구와 고향바다로 망둥어 낚시질 가자 약속이 되어있던 날입니다. 나는 낚시에 관한 경험도 지식도 전무하나 몇년 전에 친구를 따라 망둥어낚시를 해 본 이후엔 낚싯바늘에 미끼만 낄 줄 알면 알고 낚여주는 미런스런 고기를 잡는 재미가 쏠쏠해서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두세번씩은 꼭 다녀오곤 합니다.
며칠동안 여러가지 일로 조금 피곤했으나 이미 약속된 일이라 오전 한나절만 바다에서 보내고 오후엔 일찍 돌아와 쉬고 싶어 서둘러 내려가는 길입니다. 내가 차를 따로 가지고 갔던 이유는 사흘전 새로 구입한 차의 운전감각도 익힐 겸 낮선 내부장치들에 대한 숙지도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새차라 조금 긴장을 하며 나주 금천의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이르렀을 때 앞서가던 차가 브레이크를 밟고 급제동을 하기에 따라서 멈춰 섰으나 시외로 벗어나올 무렵부터 내 뒤를 유난스레 바싹 붙어오던 차가 제동을 못하고 뒷꽁무니를 들이박고 맙니다. 내 차를 들이받은 사람은 4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여자분이었는데 "미안하다, 죄송하다"를 연발하면서도 "찌그러진 부분은 교체가 아닌 수리를 하면 고맙겠다"는 말을 합니다.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속이 상해 수리소에 가서 듣고 결정하겠다며 헤어졌지만 고향에서 되돌아 올 무렵엔 마음도 많이 가라앉고 저 역시 지난날에 있었던 감추고 싶은 일도 있었던지라 월요일쯤에나 수리를 하고서 수리비를 청구할 예정입니다. 자동차 사고와 관련하여 예전에 내가 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곤 합니다. 차를 처음 샀을 때 운전도 숙달 할 겸 전주 처가에 다녀 올 때의 일입니다.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교차로에서 직진신호가 바뀌여 진행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앞서가던 차가 갑자기 급정지하길레 나 역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내 차가 밀려서 앞차를 들이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뒤에서 들이받았으니 순전히 내 잘못이었으나 적반하장으로 되려 큰소리를치고모든 책임까지도 전가를 시키려 했으니 내게 들이받힌 사람이 나처럼 초보였으니깐 망정이지 그렇잖았으면 큰 조롱거리가 될 일이었습니다. 마침 이웃에 눈인사 정도를 하며 지내던 경찰공무원이 계셨는데 그분께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자문을 구했더니 "인사사고만 아니라면 앞차의 손상부분에 대해 수리를 책임지겠다 하고 그냥 오시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내 스스로 생각할 때 나는 참 오기스럽고 불량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기왕에 큰소리를 쳐서 기까지 제대로 죽여놨는데 수리비를 책임지겠노라며 납작 업드릴 수는 없는 일이라 들이받힌 차는 뒷 범퍼를, 내 차는 본넷을 새로 갈아야 할 일을 "서로 재수가 없어서 생긴 일로 치자"며 선심이라도 써주는 양 하고 헤어졌던 일을 생각할 때마다 그날 내게 당했던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들녘에선 벼베기가 한창이고 무등산을 다녀 온 사람들은 산의 정상에서 부터 단풍이 곱게 물들어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는 가을소식을 전해줍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바닷물에 몸을 담근 채 미련스러운 고기와 잘 놀고 온 때문인지는 모르나 내 차를 들이받고 많이 미안해 했던 사람에게 전화라도 해서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의 여유도 생겨나는 날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 가을이 아니라면 이런 마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