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86, 가을입니다.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09:44
( 2003년 9월 15일 월요일 )
추석을 이틀 남겨놓고지나간 태풍의 무리에서 뒤쳐진 구름 몇 조각들이
갈 길을 잃어버린 채 허둥대고는 있지만
모초롬만에 맑은하늘과 눈부신 햇살을 받아
들녘이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어가기 시작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번 추석에 성묘를 가면
하늘만 쳐다보며 농사를 짓고 사는 고향사람들에게
그동안 잘 지내셨냐는 인사조차 건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올핸 고르지 못한 날씨때문에 고향사람들의 고생이 더 많았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도 크고작은 어지러운 심사로
힘들었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내 마음에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도
아직 짙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남아있다면
태풍에 구름 휩쓸려가듯 그렇게 말끔이 걷혔으면 하는 바램을 해 봅니다.
어제 해질녘엔 친구하고 무등산의 꼬막재를 다녀왔습니다.
네시 반쯤 산 밑에서 출발하여 한시간 반을 걸어서 도착한 꼬막재엔
붉은 노을빛을 받아 갓 피어난 억새꽃이 바람에 몸을 맏긴 채 흐늘거리는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만약 이런 풍경을 혼자서 보고 내려왔다면
다음에 누구에게 옮길 일이 있더래도
말 주변이 없어 제대로 옮기거나 그림으로 그려 줄 수도 없는 일이라
그럴 때 증인이라도 되어 줄
또는 내가 그린 그림에 덧칠이라도 해 줄 그런 친구가 함께 있었기에
아무런 걱정도 없이 억새꽃 속에 한동안 흠뻑 파묻혀 머물다
해가 진 뒤에야 내려왔습니다.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을 무렵 산장으로 하산해서 음식점 앞에 이르자
술은 입도 안 대는 녀석이 주막에 나를 끌고 들어가
도토리묵에 동동주 한 병을 시킵니다.
땀을 흘린 뒤라서 동동주 맛이 그리 좋을 수가 없으나
혼자만 마신다는 건 마음편할 일도 아니라
애써 표정을 감춘 채 한 병을 다 비웠습니다.
비록 자신에겐 불편하거나 상관없는 일일지래도
누군가를 위해 감내를 하고 배려 할 줄 아는 친구의 마음이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습니다.
태풍이 들녘을 휩쓸어 가고
온갖 벌레가 먼저 먹어버리고 나면
비록 맨 마지막 남겨진 몫이지만
기쁘게 걷어들이는 농부의 마음이 풍성한 것 처럼,
세상사 숱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
이런 친구가 내게 있는 날까지는
가을걷이를 끝낸 농부의 마음만큼이나 풍성하리라 믿습니다.
추석을 이틀 남겨놓고지나간 태풍의 무리에서 뒤쳐진 구름 몇 조각들이
갈 길을 잃어버린 채 허둥대고는 있지만
모초롬만에 맑은하늘과 눈부신 햇살을 받아
들녘이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어가기 시작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번 추석에 성묘를 가면
하늘만 쳐다보며 농사를 짓고 사는 고향사람들에게
그동안 잘 지내셨냐는 인사조차 건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올핸 고르지 못한 날씨때문에 고향사람들의 고생이 더 많았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도 크고작은 어지러운 심사로
힘들었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내 마음에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도
아직 짙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남아있다면
태풍에 구름 휩쓸려가듯 그렇게 말끔이 걷혔으면 하는 바램을 해 봅니다.
어제 해질녘엔 친구하고 무등산의 꼬막재를 다녀왔습니다.
네시 반쯤 산 밑에서 출발하여 한시간 반을 걸어서 도착한 꼬막재엔
붉은 노을빛을 받아 갓 피어난 억새꽃이 바람에 몸을 맏긴 채 흐늘거리는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만약 이런 풍경을 혼자서 보고 내려왔다면
다음에 누구에게 옮길 일이 있더래도
말 주변이 없어 제대로 옮기거나 그림으로 그려 줄 수도 없는 일이라
그럴 때 증인이라도 되어 줄
또는 내가 그린 그림에 덧칠이라도 해 줄 그런 친구가 함께 있었기에
아무런 걱정도 없이 억새꽃 속에 한동안 흠뻑 파묻혀 머물다
해가 진 뒤에야 내려왔습니다.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을 무렵 산장으로 하산해서 음식점 앞에 이르자
술은 입도 안 대는 녀석이 주막에 나를 끌고 들어가
도토리묵에 동동주 한 병을 시킵니다.
땀을 흘린 뒤라서 동동주 맛이 그리 좋을 수가 없으나
혼자만 마신다는 건 마음편할 일도 아니라
애써 표정을 감춘 채 한 병을 다 비웠습니다.
비록 자신에겐 불편하거나 상관없는 일일지래도
누군가를 위해 감내를 하고 배려 할 줄 아는 친구의 마음이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습니다.
태풍이 들녘을 휩쓸어 가고
온갖 벌레가 먼저 먹어버리고 나면
비록 맨 마지막 남겨진 몫이지만
기쁘게 걷어들이는 농부의 마음이 풍성한 것 처럼,
세상사 숱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
이런 친구가 내게 있는 날까지는
가을걷이를 끝낸 농부의 마음만큼이나 풍성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