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84, 소심한 탓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09:42

( 2003년 8월 21일 목요일 )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껴지는 크고작은 거슬림에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못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머리를 흔들어서
지워버리고 털어내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의연해지고 담담해지고 초연해지는 그런 일 말입니다.

타고난 것이든 살면서 몸에 밴 습성이든
나의 소심함 탓에 힘겨워하며 사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타고난 것이라면 조상 탓이라도 할 일이지만
살면서 얻은 습성이라면 그야말로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짐을 평생 보듬은 채 살아갈 일이 아니란 걸 뻔이 알면서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만큼 지쳤다는 느낌이 들기 이전에는
결코 내 던지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어리석고 답답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시간들의 초입에 생겼던 무거움을
그 시각이 다 지나는 동안까지
털어내지 못한 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때 빠져들었던 어두운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오랫동안 허우적거리는경우가 허다합니다.

감추고 싶었던 내 치부를 이렇게나마 다 드러내는 뜻은
끝이 없을 것 같은 어둡고 긴 터널 저만큼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는 것 같아서 입니다.

불빛 보이는 곳이 긴 터널의 끝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곳이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작은 구멍이 있어
가슴이 터질 만큼 숨한번 맘껏 들이킬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좋을 듯 싶기 때문입니다.

삶이 힘에 겹다 여겨지는 건

小心한 탓이 아니고선 그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