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83, 모든게 내탓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09:40

( 2003, 8, 10. 일요일 )

타인의 일이라 여길 땐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일"에
막상 그 일이 내 일이 되었을 땐
저는 혼자서 그 일 하나로 온갖 성을 쌓기도 하고
다시 허물었다가 또 다른 집을 짓기도 합니다.

남들이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대수롭지 않을 일"이
저에겐 늘 마음의 병을 키워버리고 맙니다.
특히 내 가정의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내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이 자기들의 가정문제로 고민을 할 때
나는 늘 賢者의 자리에서 카운셀러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우습게도 막상 내가 그런 벽에 부딪쳤을 땐
나는 그 사람들 보다도 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
더 많이 힘겨워하곤 합니다.

문제는 내가 많이 힘들어 할 때
그 단초를 제공했던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듯한 담담한 표정이
내 어지로운 심사를 더욱 짙이겨 놓고 맙니다.

평소 성격이 조금만 더 대범했더라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피곤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런 성격을 타고났다 할지라도 바꿔서 살지 못함은
어떤 이유로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서
일이 생겼을 때 심난스러움에 힘겨워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내 운명입니다.

다만 바꿔야 한다며, 또 바꾸려 시도를 할 때마다
근본은 그대로인 채 겉만 맴돌고 마는 탓에
심난할 때 안으로 숨겨놓은 채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짓이 더 힘들 일이라서
차라리 드러내고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편할 일입니다.

내 스스로에게 "타고난 건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은
채념일 수 있습니다.

내 성격이 그러한 탓에 털어내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것은
원인이 누구에게서 부터 시작되었든 간에
아내탓, 자식 탓이 아니라
모든 게 다 내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