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지리산으로 떠나는 날
( 2003.08.02 )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지혜롭지 않거나 어질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산을 좋아해서
틈만 있으면 산에서 하루를 보내면서도
아직 수양이 덜 된 탓인지
비켜 돌아가는 지혜도 갖추지 못했고,
어질지 못해서 담겨진 응어리를 쉬 삭히지 못한 채
오랜 시간동안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곤 합니다.
비록 또 다시 헛걸음이 될지언정
지혜와 어짐을 조금이나마 닮아보려는 심사로
2박 3일 지리산 종주의 기나긴 산행을 떠납니다.
길을 걷는 동안 털어내도 좋을 그 무엇이 있다면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연습도 부단히 할 생각입니다.
조금은 먼 길,
그리고 산 길에서의 사흘은 짧지않은 시간이지만
길동무가 되어주겠노라며 따라나서는 친구가 있어 이처럼 든든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스스로 원해서 산을 찾았다고 할지라도
홀로 산길을 걷는 일이 많다보니
호연지기를 즐기는 여유보다는
고단함과 호젓함이 느껴질 때가 더러 많습니다.
동행이 있다고 해서 다 좋을 일은 아니지만
넉넉하여 여유로운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더 없이 좋을 일입니다.
좋은 풍경을 만나 바라보는 자리에서,
허기진 배를 채워넣는 자리에서,
타는 갈증에 목을 적시는 자리에서,
지친 다리를 쉬는 자리에서,
땀내나는 침상에 누워 잠시나마 눈을 붙이는 자리에서,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든든한 일입니다.
산길을 걸으며 좋은 느낌으로 오는 모든 것들을
가슴속에 모두 담아오겠습니다.
고단한 삶이 나를 지치게 만들 때
동행과 함께 걸어 든든했던 길을 되돌이켜 볼 수 있도록.......
지리산으로 떠나는 날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