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79, 장마가 끝날 무렵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09:28
(2003년 07월 16일 수요일)

장마철이라서 거의 보름만에 春蘭에 물을 주다보니
느낌까지도 새삼스럽습니다.

춘란이란 놈의 습성이 물을 좋아하긴 하면서도
과습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특히 여름철엔 물을 뿌리고 나서 빨리 말려주지 않으면
새로 돋아난 어린싹이 주저앉아버리는 연부병이 치명적이라
비오는 날이나 장마철에 있어 물을 주는 일엔
여간 신경쓰이지 않습니다.

흔히들 춘란을 키울려면 물주기 삼년, 통풍 삼년, 분갈이 삼년이 지나야
춘란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 수 있다고 말들을 하지만
10년이상 함께 해 왔던 녀석들의 생리를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습니다.

10년 이상 함께 해 왔던 녀석들 중에는
새촉을 뾰족하게 올리는 순간에
작년에 올렸던 어미촉이 죽어가는 짓을 되풀이 하므로써
번식은 커녕 늘 제자리 걸음만 하는 녀석들도 있고,
다른 놈들에 비해 각별한 보살핌을 받아오면서도
어느날 갑자기 잎사귀에 갈색 반점을 만들어 놓고서 당황하게 하던 녀석도
올 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서 속이 상하고,
어떤 녀석들은 관심밖에 둬도 튼튼한 새촉을 두촉씩이나 올려놓고
가을엔 꽃대까지 올려주니
이 놈들을 대할 때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춘란이나 인간이나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점에서 똑 같겠지만
인간의 생명에 비해
정말 하차잖을 것 같은 여린 녀석들의 병치레를 지켜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작지가 않은데,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병치레만 하는 자식을 바라보셨던 내 어머님의 심사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지요!

내가 건강하게 살아야 할 이유이며,
이것만이 내 어머님에 희생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일 먹구름이 오락가락 하다가도
가끔씩 파란 하늘이 열리고 따가운 햇살이 내리쬘 땐
한 여름의 무더위를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7월 중순 장마가 끝날무렵이면 늘 그랬던 것 처럼
무더위가 시작되면
춘란에 물을 주는 날이면 선풍기를 돌려서 말려줘야 하고,
잎사귀를 살펴서 병반이나 충이 생기지 않았는지 살펴줘야 하고,
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약도 뿌려줘야 하고....

꽃대는 가을 초입에 올려야 좋으련만
철도 모르는 녀석들은 가끔씩
이맘때쯤에 꽃대를 올려서 나를 당혹하게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