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77, 소쩍새를 기다림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09:25
( 2003년 7월 10일 목요일 ) 사람들은 곧잘 소쩍새 이야기를 하면서 그 새가 "소쩍 소쩍"하고 울면 '올 해엔 풍년이 들 것이므로 솥이 적으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뜻이고 "소탱 소탱"하고 울면 '흉년이 들어 솥이 텅 빌 것이므로 쌀을 아껴먹으라'는 뜻이라고 들 합니다. 봄날에 숲속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가 소쩍소쩍인지 소탱소탱인지를 귀 기우리지 않았던 것은 올 해 농사가 풍년이든 흉년이든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쩍새에 얽힌 이야기는 가난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고 이 새가 울기 시작할 무렵이면 들녘에선 모내기가 시작되는 시기라서 당연히 "모내기가 시작될 무렵에 돌아오는 새"라고 해야 맞을 일이나 저는 이 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카시아꽃과 짝을 지어놓곤 합니다. 이 새가 뜸부기처럼 논에서 운다면 모를 일이나 초가을무렵에끊어졌던 소리가 이듬해 봄 아카시아 꽃이 피어날 무렵에야 집 주변의 숲에서 들려오곤 하는 소리라서 생각없이 그렇게 말을 할 뿐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올 핸 아무리 생각해도 참 묘한 일입니다. 여느 해 같으면 한창 그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 올 때이건만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 잠시 들렸을 뿐 장마가 시작될 때 뚝 그치고 말았습니다. 지난 겨울에 그리도 많은 눈이 내리기에 내년 농사의 풍년을 미리 생각 했었으나 봄이 되면서 유난히 비가 자주 내리고 장마가 시작되자 마자 하루가 멀다하고 끊임없이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영산강 지류인 황룡강 다리위를 20년 넘게 지나다니다 보니 흐르는 강물만 봐도 간밤에 비가 얼마만큼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제 출근길에 차창밖으로 강둑까지 넘실대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젠 제발 그만 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농사에 흉년을 걱정하는 것은 나의 태생적인 한계라서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닙니다. 비가 알맞게 내리고날씨가 좋을수록 풍년이 가능할 일이나 올 처럼 잦은 비와 흐린날의 연속이니 이른봄에 들렸던 소쩍새 울음소리는 '소탱'이었을 게 분명합니다. 농사를 짓고사는 것도 아니면서 비가 와서 할 일 못하는 것도 아니면서 날씨 푸념을 하는 속뜻은 잠 못 이루는 이를 위해밤마다 울어주곤 하던 소쩍새가 잦은 비에 쫓겨갔을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