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67, 가장이라는 이름

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09:05
( 2003년 05월 21일 수요일 )

대학생인 딸녀석은 학교에서 밤 열시 어떨 땐 열 한시가 가까울 쯤에 들어오고
공부를 안 하는 것 까지도 나를 닮은 고등학생 아들녀석은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밤 열시니,
내가 많이 피곤해서 녀석들이 집에 돌아오기 전에 잠이 드는 날이면
얼굴도 보지 못하며 하루를 보내는 날들이 더러 있습니다.

언젠가는 딸 녀석이 하도 오랜만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내게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하면서
얼굴을 들이밀며 웃을 때도 있고 보면
가족이란 하루의 시작은 물론 마무리까지도 함께 할 수 있어야만 할 일입니다.

직장에서 퇴근하여 돌아올 때면
아이들은 당연히 집에 없을 줄 알고 있지만 아내마저 집에 없을 땐
빈 집에 들어서는 순간의 허전함이 두배 세배가 될 일이라서
가난하여 집이 넓지않은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때가 더러는 있습니다.

내가 신혼일 무렵만 해도 아내의 역할은
가사만 전담하는 경우가 일반적일 때라서
우리역시 큰 이견이 없이 그렇게 시작은 했었지만,
아이들이 제 몸을 스스로 추스릴 줄 알게 된 이후론
아내의 일거리와 역할이 줄어든 대신
늘어나는 여유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소일거리가 있기를 원하나
나의 입장에선 "아내란 집에 늘 있어주는 사람"처럼 각인되어 있다보니
그 고정관념을 깨뜨리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남들에겐 꽤나 넓은 도량을 보이면서도
내 가족에겐 가정이라는 올가미를 씌워놓고서
남들에게 보다는 훨씬 좁은 잣대를 들이대며 운신의 폭을 좁혀놓곤 합니다.

이것은 간섭일 수 있고 구속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앞세워서
갖가지 제약을 스스럼없이 해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나는 밖에서 노출이 심한 여자들에게 고개를 돌려서까지 쳐다보며
노출이 심할지래도 잘 어울리는 사람들에겐 "그런대로 괜찮다"라는 평을 하지만,
내 딸이나 아내에겐 "여자의 아름다움은 정숙에서 부터 온다"는 걸 수없이 강조를 하면서
짧은 치마나 꽉 조이는 옷, 가슴의 일부가 드러나 보이거나 얇아서 속이 비추는 옷 등은
절대로 입지 못하게 하곤 합니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어느 해 연말 아내의 여고동창들의 모임에서 초저녁 모임을 끝내고
"친구들이 night club으로 이동을 해서 all night를 하겠다는데 어떻하면 좋겠냐"며
제게 넌지시 양해를 해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기에
나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나 용납이 될 일이 아니라서
그 날 이후로 다시는 그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내가 이러는 탓에 재미없는 세상살이를 할 수밖에 없을 아내나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조차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관념이 바꿔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내 가족에 대한 간섭과 구속은 계속될 게 뻔한 일이나
행여 이런 일이 가장의 횡포로 비춰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자기가 하고자 했던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무언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행복할 일입니다.

텔레비젼의 요리프로를 보면서 열심히 메모를 하곤 하는 아내는
요리하는 일이 재미있다고 합니다.
나는 일부 혐오식품만 아니라면 아무것이나 잘 먹는 탓에
아직까지 아내가 챙겨주는 음식에 투정을 해 본 기억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행여 그것만으로 솜씨가 좋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을런지는 모를 일이지만
솔직히 말해 요리란 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만 들어가면 될 일이라서
요리의 솜씨가 있고 없고는 전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세상살이에 있어 상황에 잘 적응하는 사람만큼 지혜로운 사람도 없습니다.
밤 늦은 귀가도, 내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 옷도
시대상황이 변했으니 만큼 어느정도 모른 채 하는 것이 지혜로울 일이라면
나와같은 사람은 죽는 날까지 고단할 수밖에 없을 것만 같습니다.

최소한 지금 생각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