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手(허수)/곽문구 2007. 7. 29. 07:56
( 2003, 3, 20 )

지난 산행에서 막 꽃망울을 터뜨린 진달래꽃을 보며
해마다 이맘때면 그냥 가기싫은 동장군이 으레 꽃셈추위로 심술을 부리곤 했는데
올핸 그런 흔적 안 남기고 그냥 지나가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짜가는 것이 안 믿겨져 달력을 봅니다.
3월 20일.....

개나리꽃도 흐드러지게 피고 양지쪽엔 벌써 잡초가 무성한데
안주하고 있는 겨울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 싫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봄이면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느라 바쁜 계절이라서
준비된 것도 없이 새로운 봄을 맞고 만 나로선니
뭔가에 자꾸 쫓기는 듯 싶어서 더 그런가 봅니다.

시간은 벌써 저 멀리 가고 있는데
이를 쫓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다 보면
표정은 늘 불안하고 마음은 편치않아 식욕마져 떨어지고 마니
혹시 이걸 보고 '봄을 탄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몸이 부실해진 탓인지
아니면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는 모를 일이나
의자에 앉으면 나른해지고 졸음은 물밀듯 밀려와
허우적거리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의 원인을 찾고 보면
결국엔 내 자신의 게으름으로 부터 시작된 일임에도
포근해진 날씨 때문에 몸이 나른하다느니
식욕이 떨어져 몸이 부실하다느니 하며
유치한 변명거리를 늘어놓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일입니다.

이젠 더 머뭇거리지 않고
나를 묶어놓은 눈에 보이지 않은 사슬을 끓어버리고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무엇인지,
미리 준비를 해 놓아야만 할 일은 또 무엇인지 생각하며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처럼
으스러지게 기지개라도 한번 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나의 삶, 나의 일을 대신 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