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227, 김장하는 사람들

虛手(허수)/곽문구 2010. 12. 17. 05:19

"내가그 집엔 하지 말라고 했잖아!!!"

치솟는 화를 참지 못해서아내에게 내 뱉는 말입니다.

승용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그리 멀지않은곳에서

아내의 친척되시는 분께서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아내는 평소벌꿀을 비롯해서 참깨, 들깨, 콩, 고추, 도라지 등 집에서 필요한 것들은

친척되시는 분한테서직접 구입을 하거나

그 분한테 부탁을 해서 그 곳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구입하곤합니다.

같은 품질이라 할지라도 그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시장보다 조금씩비싸다는 느낌이 드는 건

도시와 가까워서 일거라는추측 말고는 다른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가는 연료비나 값을 따지지 않는이유는

행여 수입산은 아닐까 하는의심같은건 하지 않아도 되기때문입니다.

하지만내가필요해서사려는 경우엔 별 문제가 없으나,

남아도는 걸 팔아달라 부탁을 받는경우엔

평소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한테권하거나

때로는 거절 못하는 이들에게떠 넘기는 경우도없질않습니다.

애써 지은 농사라서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드리려는걸이해못할 일은 아니나

사는 이들에게 있어선 가격이 같다거나 싸지 않다는 느낌일경우엔

불편한 심사도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서 늘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올 핸 김장용배추값이 괜찮다는데도

배추를 백여포기만 팔아달라는부탁을 받은 모양입니다.

추측건데 작은 텃밭에 배추를 심어 김장을 하시고난 나머지를

시장에 내다 팔기엔어중간해서그러시는 모양입니다.

내식성이 까다롭지 않다고는 해도 익어서 신김치 보다생김치를더 즐기는편이라서

평소에두어 포기씩담아먹곤 했던지라

우리집에서 김장이라며 김치를 담았던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한 일입니다.

하지만 김장김치에 대한고정관념이 바뀐 건

지난 초여름 무렵 지인을 따라한 매실농장에갔을 때

시지도 않고 개운한맛의 김장김치를 먹어 본뒤부터 입니다.

"맛없는 우리집김치도 남의 집에서 먹으면 맛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나

시지 않다면 익은 김치도 가끔씩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올 핸 나의 권유로 김장을 열포기쯤하려던 참이라

때마침 잘 된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시장보다 싼 배추를염장까지 해서 주시겠다니

김장을 하는 이들의 입장에선다듬고 절여서 씻는일까지도덜 수있겠다 싶어

아내는 이집 저집 전화를 걸어 대며부탁받은 백여 포기를다 채운 모양입니다.

추운 날씨에 노인네가 배추를 다듬고 절여서 씻는 수고가 얼마일지는

눈으로안 보인다 해도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며칠 후배추가 도착하던 날

승용차에 배추를 싣고이집 저집 배달을 마치고 나니 새로운 걱정들이 시작됩니다.

미리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람마다 개성이 다른지라

배추가 크니 적니, 염장이 잘 되었느니 못 되었느니, 맛이 있니 없니 하는 불평이라도 생긴다면

그걸 감수할자신이 서질 않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배추를 나눠 준세 집 중 두 집에서

"싸고 좋은 배추로 편하게 김장을 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기에

비록 남의 일에수고는 했다 할지라도작으나마보람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추를 나눠 준 사흘뒤인 어제 아침,

집을 막 나서려는 순간 아내의 전화가 울리고

통화를 마친 아내의 표정이썩 개운치가 않아서 물었습니다.

"내가권하지 말라고 했던그 집 맞지?"

".............."

좋은 일이라면작은 불편쯤은감수하려는 게 평소의 생각이나

작은 것에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참으로불편한이들에겐

하지 않아도 괜찮을 일이라면 제발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2010,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