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풍경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날

虛手(허수)/곽문구 2013. 8. 12. 06:31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에 미리 도착했던 건

더위가 절정일 즈음의 바닷가 풍경이 궁금해서 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지않은 사람들이 솔숲 그늘에서 또는 물 속에서 하루의 열기를 식히거나

하나 둘씩 썰물 빠지듯 짐을 챙겨 따나는 광경을 보면서

주말과 휴일의 끄트머리에서 새로 시작되는 한 주를 준비하기 위함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의 한 시간의 여유......

그 여유라도 즐겨볼 심사로 바닷가 여기저기를 걷다가 해가 서산에 내려앉을 무렵

적당한 곳에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그 위에 얹으려던 찰라........

 

아뿔사~~!!!

이런 황당할 일이......

눈앞이 아찔한 것도 잠시일 뿐,

아주 오래 전에 함께 출사를 나갔던 지인이 메모리카드를 갖고 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

박장대소 했던 일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뾰족한 수도 없다.

포기하는 수밖에.......

남의 걸 훔쳐먹다 들킨 도둑고양이마냥

삼각대를 들고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내 모습이 실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씁쓸한 마음을 곱씹으며

차를 돌려 한 1km쯤 달릴 무렵 네비게이션 아짐의 낭낭한 목소리....

"GPS가 연결되었습니다"

 

"그래, 네비게이션~~!!!"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며 차를 세워놓고

네비게이션의 메모리 카드를 꺼내 카메라에 넣으니

촬영가능 컷 수가 "E"에서 "9"로 바뀌는 게 아닌가?

 

그래~!

바로 이것이여~! ^^

이가 없으면 잇몸이 대신한다 하지 않았던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돌아 와

그 자리에 당당히 삼각대를 세우고 나니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사전 준비가 철저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 명성에

작은 흠집이 하나 생겼다.

 

생각날 때마다 웃음이 나올 흠집.......

 

 

- 함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