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날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에 미리 도착했던 건
더위가 절정일 즈음의 바닷가 풍경이 궁금해서 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지않은 사람들이 솔숲 그늘에서 또는 물 속에서 하루의 열기를 식히거나
하나 둘씩 썰물 빠지듯 짐을 챙겨 따나는 광경을 보면서
주말과 휴일의 끄트머리에서 새로 시작되는 한 주를 준비하기 위함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의 한 시간의 여유......
그 여유라도 즐겨볼 심사로 바닷가 여기저기를 걷다가 해가 서산에 내려앉을 무렵
적당한 곳에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그 위에 얹으려던 찰라........
아뿔사~~!!!
이런 황당할 일이......
눈앞이 아찔한 것도 잠시일 뿐,
아주 오래 전에 함께 출사를 나갔던 지인이 메모리카드를 갖고 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
박장대소 했던 일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뾰족한 수도 없다.
포기하는 수밖에.......
남의 걸 훔쳐먹다 들킨 도둑고양이마냥
삼각대를 들고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내 모습이 실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씁쓸한 마음을 곱씹으며
차를 돌려 한 1km쯤 달릴 무렵 네비게이션 아짐의 낭낭한 목소리....
"GPS가 연결되었습니다"
"그래, 네비게이션~~!!!"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며 차를 세워놓고
네비게이션의 메모리 카드를 꺼내 카메라에 넣으니
촬영가능 컷 수가 "E"에서 "9"로 바뀌는 게 아닌가?
그래~!
바로 이것이여~! ^^
이가 없으면 잇몸이 대신한다 하지 않았던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돌아 와
그 자리에 당당히 삼각대를 세우고 나니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사전 준비가 철저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 명성에
작은 흠집이 하나 생겼다.
생각날 때마다 웃음이 나올 흠집.......
- 함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