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풍경

아끼는 사진 한 장

虛手(허수)/곽문구 2010. 11. 22. 05:03


요즘엔 콤바인으로탈곡을간단히 끝내지만

당시엔벼를 베어 논에서말리고

볏단을 묶어서 지게로집으로 가져와 마당에 벼늘을 쌓았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다른 동네에 비해 논과 밭이 많은 곳이라서

농번기만 되면밤을 낮삼아 일을 해야만 하는 참으로 일 많은 동네였다.

고구마를 캐서 말리고,서숙(조)이나 콩을걷어 들이는 등의 가을걷이와

유채나 보리등의 씨뿌리는 일까지 모두 첫눈이 내리기 전에 끝내야만 했기에

마당에 쌓아 둔 나락 탈곡은가을걷이의 맨 나중의 일로밀쳐질수밖에 없었다.

탈곡을 한 볏짚 벼늘을 모퉁이에 쌓고

나락을 곡간에 가득 채우고도 남아서 마당에 볏짚으로 마람을 엮어 만든 뒤주(우리 고향에선 두데)에

남은 나락을 채웠으니

사진은 아마도 12월 쯤의 상황인 것 같다.

한복을 입으신 내 아버님,

사진엔 흐릿하지만 찢어진 검정 통고무신에

나 보다 키가 훨씬 작으셨던작은 아버지의 길이가 짧은 예비군복.....

예비군복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

8km 떨어진읍내에 사셨던 작은 아버지께선 예비군 훈련이 있는 날이면늘 내게 대신 나가라고 하셨기에

밤에 나갈 때면머릿수만 맞으면 될 일이라서 쉽게 해결될 수 있었으나

얼굴을 감출 수 없는 한 낮엔늘 예비군 중대장이라는 사람이 나를보고선

"어~이 총각~! 자네 예비군 맞아?군번 대봐~!!! 누구 대신이여?"

"........."

가을걷이가 끝난 뒤면 비로서 농부들의 신선노름이 시작됨과 더불어

봄부터 가을까지 죽어라 논밭갈이를 했던 누렁이는내년 봄이 올 때까지

날마다 외양간에서주는 걸 먹고, 싸고, 자고,놀고......

제 먹을 꺼나 챙겨 먹으면 덜 밉지....ㅎ

신선보다 더(?) 신선이 되어있는 누렁이에게 하루 세끼씩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선

최소한사나흘에 한번씩은 여물을 썰어야만 했다.

주로 고구마순과서숙(조)대와볏짚을썰었는데

아버님께선혼자서 할 수 있는 손작두가 아닌 두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작두를 쓰셨다.

발작두가 손작두보다 능률면에서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작두 모가지에 묶은 세끼줄을 오른손에 쥐고올리는 순간

아버님께서 여물을밀어 넣으면 나는 힘껏 내리 밟아썰고..........

손과 발이,

그리고 아버님과 나의 호흡까지도맞지 않으면 아차하는 순간에 대형사고가 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단 한번도사고를 치지 않았다. *^_^*

아버님과 내가 여물을 썰고 있는 광경을매형께서 카메라에 담으셨다.

월남전에 참전하셨다가 귀국하실 때 가져오셨던 바로 그 "야시카"라는 카메라로....

그 이듬해엔 아랫채 초가지붕(사진의 왼쪽)을 헐어 내리고

사진에서 나의왼발로 딛고있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담장을 쌓았으니1974년,

지금으로 부터 36년 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