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아내의 집
나이 40 초반에 한 백화점의 어린 점원으로 부터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처음 듣던 날,
세상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이
아저씨를 넘어 선 아버님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착찹하기도 했었다.
당시만 해도 아직은 앳된 아줌마이고 싶었던 아내로선
아저씨보다 더 나이 든 아버님으로 비춰지는 남편을 통해
행여 자신도 아줌마가 아닌 어머님으로 보여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는지
당사자인 나 보다 더 당혹스러워 했었다.
덧없이 흘러 간 청춘이 못내 아쉽고
세월에 등떠밀려 늙은 이로 자리메김 되어진다는 게 서글픈 일이라 할지라도
젊은이이건, 아저씨이건 또는 아버님이건 어느 것 하나
내가 선택하거나 마다 할 일은 아니다.
그런 일을 일찍 겪었던 까닭에
나이 50 반열에 훌쩍 올라 선 지금에 있어 아직 젊다는 생각은 정신적일 뿐,
생물학적으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 들이는 게 마음편할 일이라서
요즘엔 삼 사십대를 사는 이들에게 "젊은이"라 부르며
내 스스로를 늙은이의 범주에 넣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간간히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고향 친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을 등졌다는소식이 들려 올 때면
친구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보다는
남아있는 가족들의 힘에 겨울 세상살이가 먼저 걱정되곤 했었다.
지금껏 단 한번도 생명엔 영원이란 없다는 진리를 잊고 산 건 아니었지만
죽마고우였던 친구녀석이 죽었을 때도,
어머님 아버님께서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을 때도,
죽음은 결코 나의 일이 아닌양
남아있는 자로서 떠나보내는 마음이 한없이 서러웠을 뿐이었다.
그러나 새로 이사를 했던 3년 전 어느날 우연히
도둑고양이 처럼 내 안 들어 와 육신을 갉아먹고 있던 종양을 뒤늦게야 발견하고서
영원히 뜨거울 것만 같았던 열정도 순식간에 식어 버리고
죽음이란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는 걸 비로소 실감하기 시작했다.
비록 뒤늦은 감은 있으나
생(生), 노(老), 병(病), 사(死)의 과정들이
내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닫고
두렵게만 여겨졌던 죽음에 좀 더 초연해 질 수 있었으니
3년 동안의 고통이 컷을지언정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8월의 햇살이 뜨겁게 내리 쬐던 날
그렇게 삼년을 살았던 집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고 새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며칠 전엔 아내 명의로 등록을 마치고
등록세와 취득세까지 모두 냈으니
지금부턴 이 집에있어권리같은 건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만약집 주인눈밖에 벗어나기라도 한다면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될 수도 있을 일이나
훗날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일을 두고 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통계적으로도 여자가 남자보다 8년을 더 산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선심쓰듯 조금 일찍 넘겨 주며
생색이라도 내봄직한 일이 아닌가?
비록 세상이 나를 속이거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생겨난다 할지라도
내 복이 그것 뿐이라 여기면 마음편할 일이다.
내일이 생일인아내의 집에서
마음편히 단잠을 자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기분도 괜찮다.
2009,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