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手(허수)/곽문구 2009. 5. 20. 10:51

오늘은

장미정원이 있는 곳으로 떠나는 날,

삶이 힘겨워

잠시나마 세상사 다 잊어버린 채

꽃과 그 향기속에 파묻혀 지내려는 건 아니야.

며칠이 걸릴런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그곳에서 되돌아 올 땐

그 동안 마음 속에 숨겨뒀던 어두운 그늘같은 건

하나도 남김없이 그 정원에묻어 두고 올란다.

그게 무어냐고?

잠시 감춰뒀다

돌아와서말 해 줄께.

세상살이 하면서

혼자만의 비밀 하나 쯤은갖고 사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잖아.

아마도.....

6월이 시작되기 전엔

돌아 올 수 있을거야.

그럼

그 때까지 안녕.

(아래)

우환을 도려 낸 자리에 새 뼈를 채워놓고서

처음처럼되돌아 와주길 바램하며 살아온 날들이 어언 2년,

세상살이가내 바램처럼되어주는 게아닌 것 처럼

뜻하지 않게생겨나는 크고작은 우환들이심난스러워

두눈을 꼭 감거나,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거나,깊은 한숨을토해내곤 하는 내속마음을

옆 사람이알 수나 있었을런지몰라.

이른 새벽이면 해가 뜨는 곳으로

해질녘이면 해가 지는 곳으로,

그러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돌아 와곧 바로 잠에떨어져 버리는 짓이

잡념이 싫은 내게 잠시도 한가로운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뜻이었다는 걸

옆 사람이 알 수나 있었을런지 몰라.

기분이 가벼울 때마시면 유쾌함도 배가 되지만

가라앉았을 때마시면 더 아래로 가라앉게 하는 게 술의 속성이라서,

자주는 아니었지만

술을 마실 때면 으레 바닥을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던 사람이

친구나지인들이 술을 권해 올 때마다

있지도 않은 의사의 경고를앞세워 술잔을내려놓곤 했던내 속마음을

옆사람이알 수나 있었을런지 몰라.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작아 진다지만

심난스러움을 나누면 나눌 수록옆으로 전염이 되는것만 같아서,

오직 세월만 약이라며달력을 서너장씩이나 미리 넘겨 놓고

세월의 더딤을지루해했던내 심사를

옆 사람이 알 수나 있었을런지 몰라.

수술대에 올라 가 누울 날을다시 앞에 두고

상처를할퀴며 지나간크고작은 우환들의 흔적만 다시채우면

어쩜끄트머리도 바라 볼 수 있게 될거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내 속마음이 어떻다는 걸

옆 사람이 알 기나 하는지 몰라.

오늘 오후에 입원을 하고

내일이 시간쯤이면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내 몸뚱아리에의사는 칼질을 해대고 있을지도 몰라.

비록원상회복을 위한 일이라지만

수술대에 올라 갈 일과 깨어난 뒤의 고통을 미리 생각하면

마음이 심난하고 착찹한 건 나도 어쩔 수 없어.

장미가 피어나고 초록이 싱그러워 사람들마다반기는데도

내게 있어선 이런저런일로 심난스럽고 더디기만 한5월.

뒤돌아 보면

자존심을앞세운 채기싸움을 하며서로 등을 대고 돌아 누울 때도 5월이었고,

타인의 간섭에 옆사람에게부끄럽고 스스로에게 짜증날 때도5월이었으며,

마치이 세상끝 천길 낭떠러지에 선듯 암담했던 때도2년 전의 5월이었고,

비록 원상회복을 위해서라지만또 다시수술대 위에 올라가야할 날도 5월이니,

내게 있어5월은왜 이렇게 힘에 겨운지

그건 내 자신도몰라.

그러나,

한 때 꿈속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을 뵐 때면

그 날은 어김없이 좋지않은 일이 생겨나곤 해서 마음졸이곤 했으나

불길한 일이 있을 거라며미리 예고를 해 주시는 아버님의 뜻을

뒤늦게야 깨닫고서감사드릴 수 있었듯이,

내게 있었던 좋지않은몇 번의 상황 또한

5월이 아닌 훨씬 이전부터 생긴 게그 때에곪아서 터졌을 뿐이라서

도려내고 새로 시작하는 의미의감사하는 계절로 여기며 살아가야하는지도 몰라.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듯이......

2009년 5월 20일.

아직은 아니라며부여잡는 걸

애써 뿌리치고 떠나온 게 잘 한 일이었는지도 몰라.

이런 5월을 그냥 떠나 보낼 순 없잖아.

배웅할 준비도 해야 하거든.

2009,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