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手(허수)/곽문구 2008. 7. 30. 04:27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콧속을 달구던 날,
딸을 가운데 두고 아내와 내가 그 옆에 누워서 낮잠을 자다가
천둥소리에 놀라서 깨고 말았다.

어느 해 보다 일찍 시작된 장마가

7월 하순이 되어도 끝이 날 줄 모르고 계속된다지만
처음 시작될 무렵 연속에서 며칠 간 퍼붓던 비 말고는
비 다운 비는 오지 않았던 터라
뜨거운 열기를 식혀 줄 소나기라 생각하니 내심 반갑기 그지없다.

지난 5월 어버이날을 사흘 앞두고
서울서 온 아이들과 함께
1박 2일 계획으로 남해안의 작은 섬을 향해
식구들과 여행을 떠나려 했던 그날 만큼이나
한참동안 후련하게 쏟아지다 그쳤다.

여행지에 도착하게 되면 갯돌해변도 걸어야 하고
바위로 되어 있는 산도 올라야 하건만
운동화가 아닌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바지가 아닌 치마를 입고 나서는 아내와 딸의 차림새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할 것만 같았다.

구두를 운동화로, 치마를 바지로 바꿔 입으라는 나와
뱃시간이 없으니 그대로 출발하자는 두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아닌 짜증섞인 말들이 오가다 결국 기분이 엉망이 되어버리자
그런 기분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목적지를 향해 10여리쯤 가다 말고서
그만 차를 되돌려 집으로 되돌아 와버렸던 일이 있었다.

나도 한 때나마
너그럽고 능력있는 남편이자
자상하고 인자한 아버지를 꿈꿀 때가 있긴 있었다.

아내를 만나 부부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동안과
아이들이 자라나 제 손으로 밥을 떠 먹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남편이고 아버지인 줄로 착각을 한 채
내 스스로 행복하기만 했던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각자가 생각하는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불평을 숨긴 채 곧 잘 따르곤 했던 아내와 자식들이
어느 순간부터 싫은 건 싫다는 뜻을 확실하게 표현하기 시작하고
세월이 흐를 수록 가장이라는 존재가 자꾸만 초라해져 가는 것만 같아
씁쓰레한 마음을 스스로 다독거리고 있던 터였다.

배를 타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적어도 2시간 쯤은
설친 새벽잠을 차 안에서 마져 잘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을 아내와 자식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집으로 다시 되돌아 와 버린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란이자 일대 사건이었다.

요동으로 가서 모가지를 걸고 짱개들과 맞짱을 뜨라는 명령을 받은 성계의 입장에선
목숨도 목숨이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빈정이 상할 일이라서
맞짱을 뜨라고 시킨 넘들을 작살내리라 작심하며
가던 길을 되돌릴 때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런 반란이 있었던 바로 그 다음날,
쫓겨 가듯 일터로 떠났던 녀석들은
뒤틀려 있는 애비의 심사만큼은 일단 추스려 놓고 보자는 셈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자주 안부를 묻는 전화질을 해댔다.

이런 상황이 비록 순간일지라도 새벽에 일으킨 반란으로 인해
나의 존재가 재조명 되는 기회였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램이었다.

흐르는 세월속에 변하지 않는 것이라곤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씩
권위주의 시대를 살다 간 가장들을 부러워 할 때가 있다.

가장이란 외로운 존재인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은 되지만
지금처럼 책임과 의무만 있고 권리를 잃어버린
초라하기 그지없는 존재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아내나 자식들이
나를 업신 여기거나 아비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여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가 늘 되찾고자 하는 권리라는 게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내 스스로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일으킨 반란은
아내와 자식들을 향한 반란이 아니라
내 자신을 향한 반란이었고 내 자신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황당해 하는 아내나 자식들에게 유치한 변명이 될런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런 빌미를 제공한 책임의 일정 부분은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있으니까..........

2008,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