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바람부는 들녘에서(16, 가을걷이)

虛手(허수)/곽문구 2008. 5. 26. 16:43

객지에서 추석을 지내러 왔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나면
한동안 술렁거렸던 마을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추석날밤 아버지의 술주정에 며칠동안이나 가슴앓이를 하던 아이도
마음의 평정을 서서히 되찾아 가는 것 같아서 내심 다행스럽다.
그러고 보면 시간은 항상 덧없이 흘러 가는 것만 같아도
생채기를 아물게 하는 데는 이보다 좋은 약이 또 있을까 싶다.

찬이슬을 흠뻑 머금은 들녘의 아침은
감방산 허리에 새벽안개 한 자락만 엷게 펼쳐져 있을 뿐
바람 한 올 지나지 않는 무거운 침묵에 휩싸여있다.

낫과 싯돌을 챙겨서 논둑을 걸어 가노라니
풀잎에 맺힌 찬이슬에 젖은 발이 시리다.
풀잎 자락을 붙잡고 밤을 지샜던 메뚜기 들이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라 톡톡 튀어 오르긴 하지만
찬이슬에 흠뻑 적신 몸뚱이가 무거운 듯 힘겨워 보인다.

아침햇살에 길게 늘어진 산 그림자가
서쪽 들녘에서부터 다가와 산 아래쪽으로 거두어 가는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논으로 나와 와삭 와삭 벼를 베기 시작한다.

모내기 때 모를 심으러 왔었던 이웃동네 사람들도 더러 있고
그 중에 모쟁이한테는 딸을 안 준다던 아주머니가
"총각! 정말 애인이 없소?"하며 몇 번이고 캐뭍는 통에
벼를 베는 논에서 하루종일 웃음이 그칠 줄 모른다.

봄날 질퍽거리는 논에서 모내기하던 때에 비해 일하는 재미가 쏠쏠한 이유는
잘 마른 논 바닥에서 낫질할 때 나는 와삭와삭 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가꾸느라 쏟았던 땀과 정성을
풍성한 결실로 거둬들이는 기쁨과 보람이 함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 영글지 못한 곡식들을 위해서
상쾌한 바람과 맑은 햇살이 들녘에 가득하고
가끔은 심술궂은 소용돌이 바람이 일어
논 바닥에 베어놓은 벼를 헝클어 놓고 지나가지만
가을의 맑고 푸른 하늘은 자꾸만 더 높아 간다.

베어놓은 벼가 가을바람에 한 사흘 마르고 나면
밑바닥에 깔려있는 벼가 잘 마르도록 뒤집어 놓고
하루쯤 더 있다가 볏단을 묶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간혹 하늘의 낌새가 이상하기라도 하면
아직은 채 마르지 않은 벼를 서둘러 묶어서 가래질 쳐 놓아야 한다.
가래질은 논둑을 가로질러 맨 밑에 볏단을 네 개를 놓고
그 위에 차례로 세 뭍, 두 뭍, 마지막으로 한 뭍을 올려놓으면
열 뭍이 되는 한 개의 가래가 되었다.

하필이면 볏단을 묶는 날
오후 늦게 쯤 부터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점차 몰려오고
금새 비가 올 것만 같다.
저녁밥도 거르고 벼를 서둘러서 묶지만
바램대로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용재에게 따뜻하게 옷을 입고 논으로 나오라고 해서
횃대롱에 불을 붙여 논둑에 세워놓았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나마 갑자기 많이 쏟아지는 비가 아니어서
다행히 벼 묶는 일을 계속 할 수가 있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비인데
그만 그치기를 바라거나 또 그럴 기미도 없다.

가끔씩 횃대롱을 밑으로 숙여 심지에 기름을 적셔 주므로써
횃불이 사그러들지 않게 하는 일이 용재가 할 일이나
차츰차츰 횃불이 사그러져 가는데도 그대로라서
"용재야! 횃불 좀 잘 들어라!"하고 소리를 질러댄다.

한 밤중에 어린 녀석에게 못할 짓을 시키는 것 같지만
떨어지는 빗방울이 사람을 매몰차게 만든다.

아직 한 마지기는 더 남았으나 빗줄기가 굵어진다.
벼를 계속해서 묶기엔 너무 젖어서 하던 작업을 멈추고
묶어놓은 볏단을 가래질 쳐서 마무리 할 수밖에 없다.

피곤해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 깨어보니,
언제 비가 그쳤는지 하늘은 맑게 개고 시원스레 하늬바람이 불고 있다.

관상대에서 흔히 말하는 건조한 대륙성고기압인 하늬바람이 불 때면
젖었던 곡식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말라 버리고 말아서
묶지 못하고 비에 젖어버린 벼를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일이다.

늦은 가을의 끝자락에서는 어떤 구름에서 비가 올지 모른다.
햇볕이 쨍쨍 내리 쬐던 하늘에
바다 쪽에서부터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고
갑자기 비를 쏟아놓고 지나가곤 했었기에
어른들은 이런 날을 두고 "구시월 도지기"라고 했다.
이런 도지기가 시작되기 전에
들녘에 있는 벼를 어떻게든 집안으로 끌어 들여야만 한다.

지게는 볏단을 논에서 집으로 옮기는데 유일한 도구다.
아낙들은 기껏해야 머리에 두 단씩을 이고 다녔지만
지게질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은 한번에 열 다섯 단씩이나 지고 다닌다.
장정 서너 명씩 어울러 지게질을 할 때면
누가 더 많이 지게에 지고 더 빨리 가는지 시합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으레 논바닥에 넘어지고 꼬꾸라지는 사람이 생겨나곤 해서
힘들게 일을 하는 가운데 잠시나마 웃고 지날 수 있다.

지게질에 관해선 조금도 소질이 없는 나로선
기껏해야 다섯 단을 지고 겨우 일어나곤 해서 웃음거리가 되지만
신체 구조상 다리가 긴 사람으로써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지게로 가져온 볏단은 마당 한 가운데 차곡차곡 노적벼늘을 쌓았다.
벼늘 높이가 초가지붕 꼭대기보다 한참은 더 올라가는데도
장정들은 노련한 선수라서 볏단을 던져 올리는 일을 걱정할 것 없다.
볏단 허리춤을 두 손으로 잡고 앞뒤로 두어 번 흔들어 관성을 이용해 던지면
노적 꼭대기까지 쑥쑥 올라가는 광경이 시원시원하다.

지붕보다 더 높게 쌓은 노적벼늘이 마당에 두 개가 세워지고
벼늘 꼭대기에서부터 비에 젖지 않도록 볏짚으로 이엉을 덮어놓았다가
들녘의 밭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는대로
발로 밟아서 나락을 훑는 탈곡기로 탈곡만 하면 될 일이다.

벼 가래가 논둑에서 하나 둘씩 사라지고 나면
속살을 드러낸 논에 허수아비만 쓸쓸히 남는다.
높은 하늘에 솔개들이 때를 지어 빙글빙글 돌다가
쏜살같이 아래로 내려와 들쥐를 낚아채 다시 비상을 할 때면
논에서 가을걷이는 거의 다 끝나는 셈이다.

아직도 고구마를 캐낸 다음
그 밭에 다시 보리갈이를 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긴 해도
설령 비가 오더래도 하루쯤 여유롭게 쉴 수도 있는 일들이라서
마음만큼은 벌써 가을걷이를 다 끝낸 것 처럼 홀가분하기만 하다.

용재가 없는 틈에 어머니께서
"올 때가 되었는데 왜 그런지 보이지 않는다" 며
나즈막하게 말씀을 하신다.
이맘때쯤이면 식구들을 데리고 이삭을 주우며 지나갈
용재아버지 '피난민'이 아직껏 보이지 않아 무척 궁금하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