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들녘에서(3, 피난민의 아들)
눈보라는 멎었으나 마루 위에까지 소복이눈이 쌓여있어
방안에 있던 수수비로 눈을 쓸어 내리려고 밖으로 나오려니
인기척에 잠을 깬 아이가 눈을 비비며 따라나온다.
마당에 쌓인 눈을 쓸려고
토방의고무신을 덮고 있던 눈을 털어서 신고
발목까지 눈이 쌓인 마당을 가로질러 헛간으로 껑충껑충 뛰어가다가
마당 한 가운데 눈에 덮인 빙판 위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털벅 찧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어린아이 앞에서 첫날부터 내 꼴이 말이 아니다.
별 몇 개가 눈앞에서 빙글빙글 도는 듯 하며 견디기 힘든 통증이 있으나
아픈 표정 짓는 것 또한 어린애 앞에서 마음놓고 할 짓도 아니어서
몽둥이에 얻어맞은 듯한 통증을 콧구멍 벌름거리며 고통을 애써 참고 있는데
아이가 킥킥대며 웃다가 내 눈과 마주치자 흠칫하며 얼굴표정을 바꾼다.
시린 손 호호 불며
시누대 비로 마당 한쪽부터 서툰 솜씨로 눈을 쓰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녀석이 나서서 눈 가래로 먼저 눈을 밀어서 모은 뒤
남은 것만 비로 쓸어모은다
일에도 요령이 있다는듯
녀석이 직접 시범을 보이며 행동으로 나를 가르치고 있다.
간밤에 나 때문에 잠자리가 불편해 잠도 설쳤을 텐데도
코끝이 찡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뒤따라 나와서
일을 거들려는 열 한살 짜리어린놈이
눈치 살피는 것부터 배웠나 싶어서 오히려가엾다.
사람들이 '피난민'이라 부르는 그의 아버지는
동네 아이들에게 있어선성은 '피'씨고 이름은 '난민'일 수도 있었던
북쪽이 고향인 피난민이다.
전쟁이 끝이 난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건만
하고 다니는 생색은 꼴이 말이 아니어서
그 동안한군데 정착을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해오지나 않았나추측만 할 뿐이다.
마을앞 언덕배기 넘어 산 속에 흙으로 쌓아만든
겉보기에도 을씨년스럽기만 한 허름한 움막은 피난민이 사는 집이다.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남들 같았으면 품팔이라도 해서 식구들의 식량이라도 얻어가련만
세상과 담을 쌓고사는 사람들처럼
동네사람들과 왕래나 접촉조차않고 살았다.
다만,추수가 끝나갈 무렵가족을 데리고 들녘을 돌아다니며
논밭에 떨어져 있는 이삭을 줍고 다니는피난민 가족이안쓰러워
어린아이들에게 찬밥 한 그릇, 고구마 한 됫박,
낡은 헌옷이라도 챙겨주시던 내 어머니에게
겉치레 인사 정도만 하고 다닐 뿐이었다
금방 눈이라도 내릴 듯한 늦은 가을날
언덕배기 밭에서 늦어진 보리갈이를 서두르고 있을 때
이삭자루를 어깨에 맨 피난민의 부인이 내 어머니에게 다가와
잔 심부름이라도 시키는 대신 밥이라도 먹여달라며 떼어놓고 간 아이가
바로 열 한살 먹은 용재다.
피난민인 아버지와 어머니,
남의 집으로 아기를 봐 주러갔다는 누나와
머슴살이 갔다가 소식이 끊어진 형과
이삭줍는데 함께 따라다니는 코흘리개 두 여동생이 있다는 녀석은
아주 작고 가냘픈 목소리와
유달리 부끄러움 많은 주근깨 투성이의 얼굴에
같은 또래의 아이들 노는 광경을 뒤꼍에서 숨어서 훔쳐보다가
히죽히죽 웃으며 스스로 부끄러운 듯 뒤곁으로 숨곤 했다.
그런 녀석에게 "함께 어울려서 놀아라"하며 등을 떠밀기라도 하면
홍당무가 되어 집 뒤꼍으로 어슬렁어슬렁 피하면서도
그나마 아이들이 겨울방학이 끝이 나고 학교에 가 버린 뒤부터
그런 구경거리조차 없어져버린
무료한 날들을 혼자 보내야만 하는 아이가 가엾기 그지없다.
내가 오기 전엔
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차려진 밥상이 어려운지
눈치만 살피는 녀석을 안쓰러워 하시던 어머니께서
내가 귀향한 이후로 줄곧
밥상 하나를 더 놓고 나와 함께 밥상을 차려주셨다.
녀석이 흰 쌀밥에 보리가 듬성듬성 섞여있는 밥을
눈치 안 보며 제법 어른만큼 먹기까지는
밥 그릇에 일부러 물을 부어서 밥을 남기지 못하게 한 일을
장난치듯 몇 번이나 되풀이 한 뒤부터 였다.
먹거리가 없던 시절어려운 손님이 집에 오기라도 하면
흰 쌀밥을 지어 고봉으로 밥을 담아 식사를 대접하실 때마다
손님이 밥을 남기지 않고 배불리 드시도록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손님 밥 그릇에숭늉을 부어 드리는 광경을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이었다.
비록 녀석이 우리집에 손님으로 온 것은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언제까지 함께 살아야 할 것도 아니겠지만,
함께 사는 동안만이라도마음붙이고 살게 하려면
어린아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벽을 걷어내줄 필요가 있었기때문이다.
부모 밑에서 사랑 받으며 한참은 재롱도 떨 아이,
배고픔이 뭔지 아는 듯한 아이,
학교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
어른 눈치 살필 줄 아는 어른이 다된 아이......
이 아이와의 만남으로 인해서
그 동안 나의 삶이 그렇게 버겁지만은 않았었다는 깨달음,
그리고 내 사치스러운 마음이 부끄러워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