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200, 힘내세요 말점아짐!!!

虛手(허수)/곽문구 2008. 3. 1. 13:46

한반도에서 봄꽃이 제일 먼저핀다는 변산에서
겨울의 한 복판인 2월 초입부터 복수초와 노루귀와 바람꽃 소식을들어 왔던지라
언제 하루쯤 넉넉하게 시간을 갖고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해 어느날,

수년동안 들꽃에 관심을 갖고 내 집 드나들 듯 해 온 무등산 어디쯤 한 모퉁이에도
변산바람꽃이 피고 있다는 입소문을 듣는 순간
무등산들꽃에 관해서 만큼은 훤하게 꿰뚫고 있노라는

그 동안의 자긍심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지라
올 해 만큼은 변산이든 무등산이든
때를 놓치지 않고 바람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 만큼은등산을 하며보내겠다는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지난 산행때 생겨난 무릅의 통증이 적잖게 신경이 쓰이는 터라
그동안 육중한 몸집을 싣고 다니느라 고생했던 다리를 얼마동안은 쉬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어제는바람꽃이나만나 볼 심사로장비를 챙겨서

변산을 향해 아침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내변산에도착하여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에게바람꽃 소식을 물으니
바람꽃 군락지를 하루에 한번씩 살펴보고 있으나

올 핸 날씨가 차가워서 그런지 아직 꽃대도 올라오지 않았노라며
내변산 주위엔 예년에 비해서 한달쯤은 늦게 피어날 것 같다고 일러 줍니다.

하지만직소폭포로 향하는 산길에서 바람꽃을 만났다는말을 직접 들었을 뿐만 아니라

설령 산지기의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기왕 마음먹고 온 마당에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계곡을 따라꽃이 피어있을 만한 양지쪽을훑으며 선녀탕까지 올라 갔습니다.

큰산이든 작은 산이든 산에서 무얼 찾는다는 건 좀처럼 쉬울 일이 아니라서

바람꽃을 봤다는 이에게좀 더 정확하게설명을 들으려고 전화를 했으나

그 분 역시 자주 다녀서 훤히 꿰뚫고 있는산길이 아니라서

그림으로 그리듯 자세하게설명해 주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길 뿐이었습니다.

꽃이 필만한 양지쪽 몇 곳을 오르내리면서

아무런 흔적도 찾아내지못한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때가조금 늦어질 뿐언젠간 만날 수 있는 일이라서

더오래 집착하지 않고 출발지로 되돌아 내려와

변산에 가면가끔씩 들리곤 했던 격포항의 말점아짐네 횟집으로 갔습니다.

여러 횟집이 한 건물 안에 있으면
건물의 입구에서 자리잡은 횟집이 장사가 제일 잘 되고
건물의 가운데 쯤에 자리잡은 횟집은 입구에서 놓친(?) 손님들이 닿기 때문에
장사가 잘 안된다는 것을 안 것은
2년전솔섬 출사를 왔을 때 말점 아짐한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소란스럽고 번잡한 곳은 가능한 피하고 싶어하는 까닭에
밥집이나 술집에 갈 때도손님이 없는 한가한 곳을 찾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2년 전솔섬 출사를 왔을때도 그런 생각으로텅빈 횟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40대 초반쯤 되는 오동통하고 복스럽게 생긴 주인 아짐이
안주가 떨어질 때를 맞춰서 굴과 멍게와 개불과 조개 등을 끊임없이 내어 오는 통에

푸짐하게 배를 채우고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격포의 말점아짐네 횟집은 나의 단골이 되었으며
지난 해 늦은 가을에 동료들과 그곳에 들러서 여유있는 식사를 한 뒤
해질녘 때를 맞춰 솔섬으로 향하려는 순간
말점아짐이 잘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 둔 전어 꾸러미를 한사코 내미는 통에
거절 못한 채 가져와 두고 두고 먹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말점.
명암에서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하도 촌스러워서 웃고 말았지만
딸을 그만 낳고 싶다는부모님의 간절한 바램과
몸 어느 부위에 큼지막한 점이 있어서 그렇게 지었다는 내력을 아짐에게 듣고 난 뒤부턴
조금은 어눌하게 느껴지는 말투와 얍삽하지 않게 장사를 하는 모습이
뜨네기 손님과 횟집 주인의 사이라기 보다는
왠지 정겨운 느낌으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평일이라곤 하지만 점심때라서 북적거릴 줄 알았던 횟집엔
오가는 손님들은 뜸한 채 횟집 주인들만 두어군데로 모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고
말점 아짐은 내가 다가가는 줄도 모른 채 마늘을 손질하고 있다가
나중에야 화들짝 놀라서 반겨 맞이합니다.

"점심때인데도 손님이 이렇게나 없네요?"
'불경기인데다 원유 유출사고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장사가 잘 안되네요'
"지난번에 주신 전어는 두고두고 잘 먹었습니다"
'냉장고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것인데......'

회 한 접시를 주문 하니
기다리는 손님이 무료할 까봐 바삐 서둘러 굴과 소라와 고막을 삶아 내 오고
손놀림을 능숙하게 하여 회를 만들어 가져오는 말점아짐에게
"손님도 없으니 술이나 한잔 하시라"고 권하니 사양하지 않고 술을 받아 마십니다.

지난 해 수술을 한 이후
단 한번도 입에 대지 않았던 술을 이젠 한잔 쯤은 괜찮을 것도 같아
빈잔에 술을 받아 채워놓긴 했으나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다 사라진 건 아니라서
입에 대는 시늉만 하면서 타인의 세상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니
알게 모르게술잔이 바닥을 드러냅니다.

"말점씨는 늘 혼자서만 일을 하시는데 서방님께선 왜 한번도 도와주질 않는거요?"
'길을 닦으러 먼저 갔어요'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남편이 5년 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과
올 해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 큰아들과 고등학교 2학년 짜리 아들을
혼자서 키우고 있다는 마흔 두살의 젊은 아낙이 실로 가엾기 그지없습니다.

술 기운을 빌어서든 온전한 정신이든 상관없이
"무료할 때 말벗이라도 되어 줄 사람이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서른 일곱에 홀로되어 살아 온 말점아짐의 씁쓸한 푸념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자연산이라며 생굴을 한 접시 가져와
능숙한 솜씨로 껍질을 까서 권해 오는 가엾은 아짐의 손을 잡고 싶은 충동도 생겨나지만
행여 이런 값싼 동정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라도 생겨날까봐
마음을 짙누르고 맙니다.

더 오래 앉아있다간 조개 한 접시라도 더 축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서는 나에게
"냉장고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귀찮다"며 손질해 놓은 전어 봉지를 들이 미는 통에
엉겁결에 받아 오긴 했지만 결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변산에 바람꽃이 피어나는 한,
그리고 횟집에서 가까이에 있는 솔섬에 해가 지는 한
나는 말점 아짐네 횟집의 단골손님이 되어 찾아 가겠지만
"다음에 올 땐 내가 앉을 자리가 없을만큼 손님들로 가득 차면 좋겠습니다"라는 작별인사가
결코 겉치레로 건네는 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애써 말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 다음에 갈 땐
식성 좋은 이들을 많이 데리고 가서
매상이라도 흡족하게 올려 줄 생각인데
내 속마음을미리 털어놔도
동료들이 모른 척 하고 따라와 줄 것인지는잘 모르겠습니다.

말점아짐!

세상살이가힘겹고 고단할 때면

누구나 마음을 기댈 곳이 없는지 두리번 거리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어차피 홀로 가야만 하는 길이라서

지금 당장 누군가가 내 곁에 없음을한탄하거나 서글퍼 할일만은 아니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곁을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엔

가끔씩은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깨를 내어주는이도있을테니까요.

힘내세요 말점아짐!!!

2008,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