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광복촌 회상
서북쪽으로 길게 누워 겨울삭풍을 막아주는 옥녀봉의 품안에
포근히 안겨있는 광복촌,
시내 어디서든 택시를 타고 광복촌 입구로 가자고 하면
길에 익숙지 않은 초보 택시 기사들도
머뭇거림 없이 찾아서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몇 십년동안 농촌과 어촌과 도시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었던 철도가
도시의 발전을 가로막는 천덕꾸러기로 전락을 하게되어 뜯겨 나가기 훨씬 이전부터
광복촌의 건널목 주위엔 나물거리를 보따리에 싸 온 아낙네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흥정을 벌리는 곳이었습니다.
나는아직까지 반찬투정이라곤 해 본 적이 거의 없으면서도
식탁에 나물 한 가지라도있어야 밥을 먹는 것 같고
특히 봄나물을 유난히 더 좋아했습니다.
향긋한 취나물과 미나리와 드릅.
된장국에 넣어 끓이면 좋을 보리와 쑥.......
한 끼에 한 가지 나물만 있어줘도 내겐 진수성찬이라서
아내는 남편의 반찬이 필요할 때면
으레 광복촌에 가서 나물을 사 오곤 했습니다.
걸어서 5분도 채 안 걸리는 광복촌 철로 건널목은
내 먹거리를 편하게 조달해 주는 곳일 뿐만 아니라,
아낙의 보따리 속에서 아직은 먼 곳에 있을 봄의 냄새도 미리 맡아 볼 수 있었기에
17년 이라는 짧지않은 세월을 마음 붙인 채 그곳에서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잠시도 쉬지않고 변화를 계속하는 세상에서
광복촌 건널목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해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
광복촌 길목에 창고형 대형마트가 문을 열고
반찬거리는 물론이고 다양한 종류의 공산품까지 쌓아놓고 팔기 시작하면서 부터
광복촌 철로 건널목에도 빠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건널목 아낙들에게 먹거리를 사가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편하게 구할 수 있는 마트로 몰려들면서
경쟁에서 버텨내지 못한 주변의 구멍가게들이 하나하나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나물을 파는 아낙들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마트의 길목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동안은 하루에 한번씩
단속반원들과 아낙들 사이에 쫓고 쫓기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거나
철로가 떼어나간 자리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어진 번듯한 쉼터로 바뀌고
주변의 상권을 장악한 마트만 홀로 남아서 유유자적 권세를 누리게 되면서
사람 사는 풋풋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광복촌은
건널목을 넘나들던 사람들이 하루에 한번씩 만나는 자리가 아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도시의 한 모퉁이일 뿐이었습니다.
반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다녀 온 아내가
"천원으론 아무것도 살 수 없다"며 불평을 늘어놓을 때마다
"요즘엔 거지한테 줘도 눈 흘긴다"라며 세상 물정을 이야기하는 속마음엔
광복촌 건널목에 대한 아쉬움조차 없는 건 아니었으나
변화를 순리로 여기며 사는 게 마음편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그곳을 떠나 온지도 어언 2년 째,
내가 식성을 바꾸지 않는 한
반찬거리를 준비하는 일에 대한 아내의 불평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그럴 때마다 봄과 사람 냄새가 풋풋했던 광복촌의 광경이
나의 기억 속에서 하얀 도화지 위에 스케치를 하듯 그려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의 길목에 서 있는 요즘같은 때엔
더욱 더 또렷하게.......
2008,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