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칡
억새나 조릿대나 칡과 같이 억척스러운 녀석들이
비탈길이건 어디건 가리지 않고 끝없이 영역을 넓혀가는 광경을 보면서
그대로 두면그들이 온 산야를 다 차지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한갖 나 혼자만의 기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드리 나무를 칭칭감아 목을 조이듯 고사시키고 마는 칡넝쿨과
야금야금 쉼없이 영역을 넓혀가는 억새와 조릿대의 군락지를 보면서
자연에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지극히 일상적인 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내 마음이그렇게담담하지 못합니다.
어렵사리 뿌리를 내린 자리라서
생명이 다 할 때까지 만이라도최소한의 기득권을 누려야 할초목들이
포악스러운 점령군에게시달리며죽어가는모습들을 볼 때마다
할 수만 있다면 인간이 적당히 간섭을 해 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몇 해 전 이른 봄 고향의 한 친구로 부터
술을 마신 뒤끝에 좋다는 칡물을 몇 십봉지 얻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하나씩 꺼내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난 후 칡물을 마셨을 때와 마시지 않았을 때의 차이가
얼마만큼인지 수치상으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나
평소에 칡물이 숙취해소에 효과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마셨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느낌이 든든했던 것 만큼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지난 초겨울 부터 옆자리의 동료가 줄곧
"하루 날 받아 칡을 캐러가자"고 하기에 망설이지 않고서 약속을 해 놓고
이번 기회에 칡에 대해서 좀 더 정확히 알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뒤져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들이 적혀 있습니다.
***************
"칡은 갈근이라 하여 태음인의 질병에 흔히 쓰이고,
감기 등으로 뭉친 근육이완, 갈증해소, 간에 든 장열 해독, 피부미용은 물론
식물성 에스트로겐 함량이 석류보다 600배 이상 많아
갱년기 여성의 폐경을 지연시켜주거나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적이며
탄수화물, 무기질,비타민C 등 각종 영양소를 다량 함유한 알칼리성 식품이나,
반면에 다량의 탄닌 성분이 함유 되어 있어 이를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철분의 흡수를 방해하고 변비의 원인으로 작용 될 수 있다"
****************
약속대로 며칠 전,
삽과 괭이와 톱 등 작업에 필요한 연장과 간식거리를 챙겨서
칡을 캐기가 비교적 좋다는 곳으로 갔습니다.
흙이 무너져 내린 곳엔 사람들이 칡을 캐간 흔적도 간간히 보이지만
야산에 지천으로 칡넝쿨이 얼키고 설켜 있어
칡을 찾아야 한다는 걱정같은 건 조금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칡넝쿨 중에 가장 굵은 줄기를 골라
두 사람이 삽과 괭이로 번갈아 가며 땅을 파려다 보니
자갈이 박혀있는 단단한 흙이라서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지가 않습니다.
(작업 중)
간혹 어쩌다가 땅을 조금만 파고서 잡아당기면 뽑혀지는 것도 있긴 있었지만
대부분은 단단한 땅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
잡아 당기면 중간에서 떨어져 버리거나
하나를 캐내는데 한 시간씩은 족히 걸리곤 해서
점심때가 지날 무렵엔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을 만큼
두 사람이 지치고 말았습니다.
녀석들이 아름드리 나무를 칭칭 감아 목을 조이며
억척스럽게 세력을 넓혀갈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었는지,
야산마다 지천에 널려있는 칡인데도
몸에 좋다는 칡물을 쉽게 또는 거져 얻을 수 없는 이유를 비로소 알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칡물을 달여 달라며
건강원에 맞겨놓았던 걸 사흘만에 찾아 오는 길에서
허벅지에 뭉친 근육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는지 뻐근하기 그지없습니다.
뭉친 근육을 푸는데도 효과가 있다는 칡물 한 봉지를 마시긴 했지만
온전히 풀릴려면 아무래도 며칠은 더 가야 할 것만 같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지만 아무래도
칡물을 몇 십봉지씩이나 보내 준 고향 친구에게
몇 봉지라도 보내야만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
2008, 2, 19,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