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석달 후
예약되어 있는 날의 며칠 전부터는
마음에서 긴장의 끈이 조금씩 조여지고
병원에 가는 날은 다른 일엔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 가고 안 가고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지만
앞으로도 1년 반은 긴장한 채 지켜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귓전에 맴돌고 있는 한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하루에 한번씩, 이틀에 한번씩, 일주일에 한번씩
그렇게 반년동안 지겨울 만큼 병원을 나들락거리다
처음으로 한달만에 받았던 지난 달 검사에서
"의심되는 흔적이 보이나 조금 더 지켜보자"던 의사가
이번 검사에선 또 어떤 말로 나를 불안하게 할런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의심이 되는 흔적이란
지난 해 여름에 턱뼈 안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골반뼈를 떼어다 넣은 자리에서
또 다시 재발되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서
답답함을 혼자서 삭히느라 지루하기만 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면 늘 그랬듯이
이날도 X-ray 사진을 찍고 나서
대기실에서 진료의 차례를 기다리는데
낮이 익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반가운 듯 인사를 합니다.
꽤나 오랜 날들을 날마다 나들락거리던 사람이
하도 오랜만이라서 더 반갑겠지만
환자와 의사가 아닌 다른 인연이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 건
병들어 병원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껴 봤으리라 여겨집니다.
수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깨달은 이후
치료와 사후관리에 조금도 소홀치 않았던 날들의 수고가
결코 헛 되어선 안 된다는 간절한 바램을 하고 있을 때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며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동안 병원에 올 때마다 환자들을 치료를 하는 의사들의 진지한 모습들을 보면서
의사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 나는 거라고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가끔씩은의사의 진료가개운치 못하다 느껴질때가 더러 있습니다.
의사는 모든 환자마다 한치의 소홀함이 없이 진료를 하겠지만
절박한 심정의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1주일, 한달을 기다려 겨우 1, 2분만에 개운치 않게 끝이 나고 마는 진료에
작은 불만조차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진료 의자에 앉아 5분쯤 기다리고 있을 때
담당 의사가 다가와 미리 찍어놓은 사진을 보더니
"재발 흔적도 없고 상태가 좋으니 앞으론 석달 후에 오세요"라며
1분도 채 되지 않아 진료를 끝내고선
횡하니 다른 환자에게 가 버리고 맙니다.
비록 아주 간단하게 끝난 진료였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한달동안 내 마음을 짙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진 듯
앞으로 석달 동안은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작은 것을 두고 일희일비하는 건 일상이 피곤할 일일 수 있으나
건강에 관해서 내 어렸을 적부터 하도 우여곡절이 많았던지라
이 문제로 평생동안 초연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더래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석달후 진료를 받는 날엔
1분 보다 더 짧은 진료 시간이 될지라도
'여섯달 뒤에 오라'는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습니다.
2008, 2, 16.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