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

193, 노환이라고 하네요.

虛手(허수)/곽문구 2008. 2. 5. 15:49

아내가 실내용 지압 신발을사와신어보고선 발바닥이 아프다며
거실 한쪽에 팽게쳐 놓은 이후서너달도 더 지났건만
그날 이후로 아직까지 단 한번도 그 신을 신는 걸 못봤습니다.

당시에 마트에서 그 신발을 사겠다고 할 때
아내의 발 보다는 유별나게 작게 보여서
"그게 당신 발에 맞기나 하겠냐?"고 물었더니
모르면 잠자고 있으라는 듯기능성 신발이라서 그렇다고 대답을 합니다.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으나 건강을 위해서 사겠다는 거라서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았던 게
지금에 와선 적잖게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신발을 신지않고 한켠에 놔둔다 해서

불편하거나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만원 안팍인 물건을 사용하지 않는 것 또한 대수로울 일도 아니나
이 신발로 인해서 내게 생겨난 후유증은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단 둘이만 사는 집이라서 불필요한 낭비는 줄일 심사로
날씨가 따뜻하거나 춥거나 상관하지 않고
밤엔 거실이나 주방에 난방을 차단하고안방만 난방을 하다보니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나로선
장비를 챙겨서 밖으로 나서지 않는 날엔
책상이 있는 썰렁한 방에서 아침이 될 때까지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엔 이런 내 습관때문에
겨울이면 줄곧 가스난로를 켜서 불편없이 지내왔으나
이사를 와서 처음 맞은 지난 겨울엔
예전에 살던 곳보다 햇볕도 잘 들고 따뜻했던지라
봄이 될 때까지 가스 한통을 다 쓰지 못하고서
나중엔 일부러 없애야 하는 귀찮았던 일도 있었기에
이번 겨울은 가스를 채우지 않은 빈 난로로 둔 채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침이 밝아 올 때를 맞춰 일어나곤 하는 아내는
차가운 방에 앉아있는 이런 내가 걱정되는지 당장 난로에 가스를 채워넣겠다고 하지만
이제 겨울도 끝자락에 와 있음은 물론 그동안 썩 불편했던 것도 아니라서
제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전 새벽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책상에 앉고 보니
왠지 거실이나 방 바닥이 다른 날 보다차가운 느낌이 들어
거실 한켠에 팽개쳐 져 있던 아내의 지압신발을 엄지발가락에 끼고서
화장실로 거실로 곡예를 하듯 아장아장 걸어다녔습니다.

어느 정도 굽이 있는 신발은내 발바닥의 한 중간에서 끝이 나고

신발이 닿지않은곳 부터는몸 무게로 인해 심하게 구부러져

발뒤꿈치 바닥이땅을 딛는 상태로 걷다보니

약간의 통증이 있었지만 못 견딜만큼은 아니라서

시를한 채 책상에 앉아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던 이틀 후부터
오른쪽 발바닥 뒤꿈치의 땅을 딛는 부위가 시큰거리고
특히 신발을 신고 걸을 땐 통증이 만만치가 않아
시간이 갈 수록 절뚝거리며 걸어야 할 정도로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어제는 옆자리에 있던 동료에게
"발 뒤꿈치의 통증이 왜 이렇게 오래가는지 모르겠다" 라며 푸념을 했더니만
듣고있던 동료가 불쑥 "노환이네요"하면서 낄낄거립니다.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도
관절이 무리했을 때 생겨나는 통증과 하차잖은 상처의 아뭄도
원기왕성했던 시절만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서
"노환"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나와 상관없는 일인 양 하며
웃어 넘길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질적인 부유와 빈곤, 행복과 불행이

마치 양과 음의 이치인냥 공존하는 세상에
그래도 가장 공평한 게 있다면 늙고 죽음에 관한 일이라서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현상들을 속상해 하고서운해 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 변화나 현상들을

내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일은 체념이 아니라

순리에 따를 줄 아는 삶의 지혜이자

필연적으로거쳐야만 할 과정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2008, 2, 5.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