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풍경 : 2026. 9. 19. 00:38

 

 

 

 

 

 

 

 

 

 

 

 

 

in 내몽골(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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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해줄 말이 없습니다.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26. 9. 18. 05:37

국민학교를 졸업한 지 35년여 만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친구들을 수소문하여 풍경 좋은 바닷가 한 리조트로 불러 모았던 것은 20023월입니다.

 

이때 모인 20여 명의 친구 중엔 가까이에 자주 보며 살아온 이들도 있었으나 졸업 이후 처음 만난 친구들이라 변한 모습에 서로 놀라거나 반가워하며 어릴 적 추억거리를 되새김질하느라 웃고 떠들며 밤새는 줄 모릅니다.

 

술을 곁들이고 흥에 겨워 가무를 즐기는 동안 밤이 깊어 지쳐갈 무렵 누군가가 불쑥 이번 모임을 계기로 동창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면 어떠냐?”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누구 하나 마다하는 사람이 없어 예정에 없었던 동창회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평소의 생각인데 이때도 예외는 아닙니다.

 

동창회를 출범시키기로 하였으니 회장 총무를 선출하는 게 그다음 순서입니다. 하지만 회장을 누가 할 것인가를 두고 의논하는 자리에 내 의사는 들어보지도 않고서 나를 추대한다는 의견이 모입니다.

 

동창회는 물론 회장을 맡는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에 친구들의 뜻을 거절 못할 분위기라서 몇 번 사양하다 마지못해 일어서서 수락의 인사를 하려던 그 찰나 한 친구(A)내가 회장직을 맡아서 하겠다라며 불쑥 나서면서부터 분위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가는 동안에 정리가 되어 가기는커녕 점차 언성이 높아지더니 A와 그의 6촌 형제간인 친구가 말싸움으로 시작해서 끝내 멱살잡이까지 하기에 이르러 참으로 난감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 또한 가만히 있다가 하필 이때야 나서지?”라는 생각에서부터 A에게 자존심에 흠집이 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음에도 애써 감정을 감추고 있던 그때 한 친구가 나를 밖으로 불러서 내 의사를 묻습니다.

 

지금의 분위기는 A에게 회장직을 맡게 해도 결코 잦아들 것 같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자존심이 A에게 양보하여 아량을 베풀 생각이 없다는 결론에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친구들이 원한다면 회장직을 맡겠노라.” 선언하고 불거진 문제를 일단락짓고 맙니다.

 

다음 날이 밝아오고 헤어지던 석양 무렵까지의 분위기는 처음과는 달랐지만 다른 잡음 없이 마무리하며 다음 모임을 기약하고 서로 헤어져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모임을 하기 몇 해 전부터 내가 사는 지역에선 A와 함께 국민학교 동창들과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며칠 후 지역 모임에 나갔다가 황당함에 억장 무너지는 느낌으로 집에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술에 취한 한 녀석(B)이 대뜸 너는 뭣 때문에 동창회를 만들어서 시끄럽게 하냐?”라는 질책을 일방적으로 퍼부어 댑니다. 그날의 상황은 분명 나는 죄인이었고 B는 서슬 퍼런 판관이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무방비 상태에서 뒤통수를 아주 세게 얻어맞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지경이라서 그만 자릴 박차고 일어나고 맙니다.

 

A가 모임에 다녀와서 B에게 어떤 말을 해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나 그 순간의 당혹스럽고 황당함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워지질 않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를 공격했던 B가 찾아와 사과하긴 했으나 당시에 내가 받은 충격이 워낙 컸던지라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마음에서의 앙금은 다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내가 소심하여 너그럽지 못한 까닭입니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총동창회 출범 이후 30여 년이 가까워져 오는 현재까지 후임 회장들의 수고와 동창들의 협조로 어느 동창회보다 성황리에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AB를 비롯한 지역 모임의 반 수는 총동창회에 끝내 얼굴을 내밀지 않아서 지역 모임의 반 수는 총동창회나 나를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들을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도 지역 모임엔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난해 동창회 행사를 마친 3월 이후 지역 모임엔 발을 끊고 말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편해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A와 나는 오래전부터 부부끼리 가끔 나들이도 다니며 가깝게 지내온 사이입니다. 두 사람이 잘 맞아서라기보다 고향의 몇몇 친구들과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부부 모임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의 부인들끼리 친해져서 구경거리나 먹거리가 괜찮은 곳이 있다면 가끔 네 사람이 편하게 어울려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내가 지역 모임에서 B에게 죄인으로 심문을 당하다시피 했던 그 날 이후 부부끼리는 태연한 척하며 어울리긴 했으나 속마음은 예전만큼 편치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A는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끔 밤늦은 시간에 술에 취한 채 전화를 해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줄거리 없는 내용으로 횡설수설하곤 하는데 이럴 때마다 아우르고 구슬려 전화를 끊게 하는 짓도 못 할 일입니다.

 

그다음 날 아침에 A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내게 전화를 했는지조차 모를 때가 대부분이라 어느 때부터는 A로부터 늦은 시간에 오는 전화는 아예 무시하고 받질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A에게 전화 거는 일은 거의 없어집니다.

 

지역 모임에 발을 끊고 한 달쯤 후 산길을 걷고 있던 때에 A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쓸개를 떼어내는 수술을 했는데 혈액암의 증상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어릴 적에 폐결핵으로 몇 년 동안 시달리고 그 후유증으로 기관지가 망가져 평생을 고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폐렴 축농증 턱뼈 종양 수술 사다리에서 추락하여 팔목 부러진 사고 등으로 적잖게 병원 신세를 져온 까닭에 누가 아프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내 일처럼 심란해지곤 합니다.

 

A는 담담한 것처럼 말을 하지만 내 가슴에 와닿는 건 집채만 한 파도가 나를 휘감고 도는 느낌이라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몸에 붙어있던 장기를 떼어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암의 징후가 보인다는 말에 어떡하냐는 말만 되풀이할 뿐 A에게 해줄 말이 없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부부 모임에서 만난 A는 많이 초췌하고 지쳐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쓸개를 떼어낸 후 회복하는 과정이라지만 병마에 시달리고 지친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치료 과정이라 음식도 가려야 하고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여서 A를 먼저 돌려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뒤 간간이 A와 통화를 하면서 쓸개를 떼어 낸 후 불편을 감수하며 사는 이야기와 암에 대한 검사나 치료는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예약되어 순서를 기다린다는 설명까지 듣고선 아내에게 넌지시 친구네와 점심이라도 한 끼 하게 부인과 통화해서 약속을 잡으라 이릅니다.

 

그리고 며칠 후 네 사람이 오랜만에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자리를 옮겨 차도 한 잔씩 하며 수술 후 치유과정과 앞으로 암에 대한 치료는 지방 병원이 아닌 서울로 옮겨야만 했던 사정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 헤어집니다.

 

그리고 몇 달 후인 지난 7월에 네 사람이 다시 만나 식사를 하면서 3월부터 시작된 그의 항암치료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그리고 9월이면 드디어 항암치료 과정이 끝난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들으며 앞으론 A가 건강을 완벽하게 회복하고 좋은 일만 있기를 빕니다.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은 참으로 외롭고 고단하다는 걸 체험을 통해서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곁에서 병수발 드는 이의 수고가 적지는 않겠지만, 고통을 참고 버티거나 이겨내는 일은 오롯이 환자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앞으로 두 번만 하면 끝나는 항암치료를 A가 무사히 잘 마칠 수 있기를 빕니다.

 

추석 벌초를 사흘 앞두고 손자 녀석의 몸이 안 좋다는 전갈에 갈퀴질 이라도 해줄 아내가 서울로 가고 벌초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할 수밖에 없어 심란했으나 지난봄 초입에 산소에 지은 창고가 있어 잔디 깎는 기계와 예초기를 바로 꺼내 쓸 수 있고 더구나 새로 산 기계라 어느 때보다 걱정이 안 되고 또 여유롭습니다.

 

 

 

400여 평의 넓은 산소를 혼자서 벌초하는 일은 젊은 사람도 힘든 일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랜턴을 켜고 시간 반 정도 작업하니 동이 트고 점심때가 되기 전에 가까스로 벌초를 마칩니다. 내 부모님은 자식을 일곱이나 두셨으면서 이런 일은 왜 나한테만 시키시는지 모를 일입니다.

 

다음 날 아침 소파에 지친 몸을 기댄 채 쉬고 있을 때 A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맑고 건강하게 들려서 반갑기만 합니다.

지금이 A가 말했던 9월이고 드디어 항암치료가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건강한 목소리를 들으니 좋다는 인사를 건넵니다.

 

하지만 A는 뜻밖의 말을 합니다.

암이 척추로 전이된 것 같다는............

 

공든 탑이 스르륵 하고 무너지는 느낌의 순간에 어떤 말을 해야 좋은지 더듬거립니다.

말주변이 없는 내가 참 한심합니다.

 

2026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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