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6, 3, 27, )물병 하나 챙겨서 홀연히 산으로 떠나 산길을 걷는 동안에산새들의 지저귐과,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는 바람소리와,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의 어울림속에 차츰 동화가 되어가고,길섶에서 고개를 내민 채 부끄러운 듯 반겨주는 들꽃을 만나는 순간마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습니다.'겨울엔 카메라렌즈만 닦으며 앉아있다'라며 푸념을 하는들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겨울은어느 계절보다 더 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다가 이른 봄이면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 산자락에서눈을 뚫고 올라와 활짝 피어있는 복수초를 만나는 순간엔눈속을 헤매다 죽순을 캤다는 어느 효자 생각이 절로 나겠지요.

- 들꽃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이래로아직 한번도 복수초와 마주친 적이 없었던 나로선올 봄엔 꼭 만나면 좋겠다는 바램을 하고나니삭풍이 휘몰아치는 한 겨울부터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2월 하순 쯤 무등산에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3월 하순이 가까워 올 때까지 산속을 헤매며 낙담해 하고 있을 무렵누군가가 '중머리재에서 00수원지 방향'이라 짤막하게 일러주길레이 날은 마음먹고 아침일찍 산으로 향했습니다.알려 준 곳의 위치가 어림짐작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수원지로 가는 방향의 숲을 샅샅히 뒤질 수밖에 없는 일이기에하루를 산 속에서 보낼 생각을 하니 차라리 마음이 느긋했습니다. 가시덤풀 엉킨 산속을 한나절 쯤 헤매다가흐르는 땀을 식힐 겸 풀썩 주저앉아 물 한모금 마시려는 순간 저 아래 참나무 사이로 무리지어 피어있는 노란 꽃망울의 군락이 눈에 들어옵니다.그동안 애타게 찾아 헤맸던 녀석들은내가 평소에 자주 다니던 길에서 그리 많이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반가움 보다는 차라리 황당함이 앞섭니다.

- 산길에서 몇 발자국만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줄도 모른 채사람들의 발길이 닿지않은 심산유곡의 양지쪽 어디쯤일 거라는 선입견만 가지고 찿아 헤멨으니'등잔밑이 어둡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봅니다.그리 넓지않은 군락지엔 꽃이 피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된 듯꽃잎을 떨궈낸 자리에 산딸기만큼 크게 자란 파란 씨방도 보이고꽃망울을 막 터뜨리려 하거나 활짝 핀 채 벌을 유혹하며 촘촘히 들어앉은 녀석들에게일일이 코를 대어 킁킁거려 보기도 하고 행여 밟히지나 않을까 조심스레 발을 옮기면서 카메라에 담아 넣습니다.햇볕이 없거나 바람이 불면 한 낮에도 꽃잎을 접어버린다는 예민한 녀석에게 얼음새꽃 또는 설련화라는 고운 이름도 있으면서굳이 복을 받고 오래살라는 뜻의 복 복(福)자에 목숨 수(壽)자를 써서 이름을 붙였으면 '수복초'라 할 일이지 왜 섬뜩한 느낌의 '복수초'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이른 봄 보다는 차라리 늦은 겨울에 피어난다고 해야 더 정확한 꽃 복수초,차디찬 눈을 뚫고 피는 꽃이라서 조그맣거나 조금 드셀 것 같음에도정작 온실속에 자라난 화초보다 오히려 곱고 탐스러워서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늦은 겨울이면 제일먼저 만나고 싶어했던 꽃을3월이 다 지나갈 뒤늦게야 만났지만사람이든 꽃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반갑게 만나서 잠시나마 함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좋을 일이라서 뱃속에서 허기를 느낄 때까지 함께 머물다 그곳을 떠나왔습니다.

- 해가 바뀌어 내년 늦 겨울 무렵부턴행여 눈 속에 피어났을지도 모를 복수초를 만나기 위해서온 산을 헤집고 다니는 일만큼은 하지 않게 되었기에그것만으로도 더없이 기분 좋을 일입니다.복을 받고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뜻의 福壽草,차디찬 눈을 뚫고 올라와 탐스럽게 피어난 꽃을 멋지게 담아 와사랑하는 이들한테 액자로 만들어 보내기라도 한다면 내 마음이 담긴 선물 중에 그 보다 더 좋은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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