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적 기억속엔
논 한가운데에 허수아비가 버티고 있으면
참새들은얼씬도 못했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누더기 옷을 걸치고 밀집모자를 눌러 쓴 채 두팔벌린허수아비를
논베미마다 세워놓고서 참새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나 얍삽한 참새들은 어느 때부터
허수아비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부터
벼가 익어가는 가을이면허수아비를 우롱하듯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그들만의 잔치를 즐기곤 했다.
낡은 방법으론 더 이상 참새들에게 먹혀들지않게 되자
사람들은그 일을폭음을 터뜨리는 기계에게대신 맏기기 시작하면서 부터
지푸라기로 만든 허수아비는 들녘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렇게 사라져 오랜 기억속에서나 가물거리던허수아비가
어느 날 갑자기누더기를 걸친모습이 아닌
색동저고리나 청바지나 신사복으로 잘차려 입고선
들녘에 패거리로다시 나타났다.
간간히터지는폭음탄 소리 같은 건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그들만의 잔치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들이 가관이다.
참새에게 마져무시를 당해 들녘에서 쫓겨났던녀석들 하는 짓이 우스워
실소를 보내고 있을 때그 중에 한 녀석이소릴 지른다.
"이 보게 비웃지 말게. 우리도 한 땐참새들이두려워 했던 존재였다고!!!"
2009, 10, 2, 평사리 들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