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1월 11일 화요일 )
연일두고 내리는 가을비에
젖은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툭 낙엽지는 늦가을 풍경에
겨울 채비를 하는 나무들의 지혜라고 생각하면 마음편할 일이건만
한 생명이 다하는 순간을 연상하고
세월의 빠름에 못내 아쉬워하는 뜻은
내 쌓여가는 연륜의 무게가 작지않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계절의 오감이 내 뜻이 아니듯
나이먹는 일 또한 마찬가지라서
떠나보내고 맞이하는 일에
앞으론 더 익숙해져야만 할 일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의 가을이라 해서
또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라고 해서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듯
겨울은 늘 추운날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먹을거리가 없어서 배가 고팟던 어린시절,
화롯불에서, 또 아버님께서 소죽을 끓이시는 아궁이에서
고구마가 익어가는 냄새가 향기롭던 계절도 있었고,.
감나무 가지를 휘감고 돌던 삭풍이
문풍지를 울리다가 두꺼운 솜이불 위에서 맴돌던 추운 밤,
그런 해의 겨울들은 참으로 길고 추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배는 고팟을지래도
대밭에서 밤새 울어대는 올빼미 울음소리가 무서워서
어머니의 가슴에 파묻혀 젖무덤을더듬거리며 잠을 이룰 수 있었기에
마음만큼은 든든하고 따뜻했던 겨울이었습니다.
그때 그 고구마 향기와 삭풍의 아우성과 올빼미의 울음소리는 모두 사라졌어도,
아버님 어머님 또한 이 세상에 함께 계시지 않더래도
내 의식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한
나는 그 계절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며 오는 겨울을 기다릴 것입니다.
비록 그때 그계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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