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이런 하루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9:08
( 2003, 6, 6 )

늦게 잠을 자도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일찍 잠을 자도 새벽잠은 꿀잠이라며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두 사람의 하루를 비교해 보면
새벽잠을 잘자는 사람들이 더 활기차고 피곤하지 않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잠이란 피곤한 몸을 원상복귀 시켜주는 과정이라고 볼 때
새벽이 되면 버릇처럼 눈이 떠지는 사람은
잠을 더 자고 싶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이며,
아침이 훤하게 밝아 올 때까지도 자는 사람들은
잠을 잘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더 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모님 생신일이라 전주로 가는 길에 담양의 이모님을 모시고 갈려면
최소한 여섯시 이전에는 출발을 해야만 여덟시에 도착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섯시가 다 되어서 깨워놓았더니
반시간 쯤을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세수를 하고 화장을 시작합니다.

서두른다고 했지만 처가에 도착하고 보니 아홉시,
딸의 아침잠이 얼마나 많은 줄 모르시는 장모님께선
"새벽부터 서둘러 차려놓은 음식이 다 식었다"며 짜증을 내십니다.

기왕 하루의 시간을 내어 나선김에 장모님의 생신만 염두에 두지 않고
구경할만한 곳 한군데라도 들려 오자고 했었기에
저녁까지 먹고 가라는 장모님의 권유를 애써 뿌리치고
처가를 나와서 진안 마이산으로 갔습니다.

3년전에 왔을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마이산에서
돌로 쌓은 탑과 암자도 두루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길섶에 자리한 주막에서 동동주 한잔 하고가라 청하길레
5천원 하는 동동주가 너무 많아서 3천원어치만 달라 했더니
한 병을 가득 채워주면서 맛이라도 보라며 한잔 따라줍니다.

막걸리의 인심은
예전에 내 어머님이 집에 오신 손님들께 그러셨던 것 처럼
정겹고 포근하게 다가옵니다.

물속에 잠겨있던 마이산 그림자가 시원한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저수지에서
주모가 담아 준 동동주를 종이컵에 따라서 마시며
파란하늘과 뭉게구름과 시원한 바람과 한데 어우려져
오랜만에 마시는 동동주에 흥건히 취해봄직도 하련만
돌아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여 모초롬 여유로워진 마음을 추스립니다.

반병쯤 남짓 남은 술은 집에 돌아가 마실 심사로 챙겨서 돌아오는 길에
저녁은 어떻할거냐고 묻는 아내의 심사는
기왕에 나왔으니 저녁도 해결하고 들어가길 바래는 뜻임을 모르는 바 아니라서
냉면집에 들러 비빔냉면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돌아오니
하룻동안 돌아다녔던 거리가 천리(400km)입니다.

새벽잠을 설쳤다며, 막걸리를 마셨다며 운전대 옆자리에 앉았다 하면
단잠에 빠지는 사람을 테우고 돌아다녔던 거리치곤 꽤나 먼 거리였지만
옆에서 자리를 지키주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 갖게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서 초저녁에 골아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한낮동안 잠에 취해서 다녔던 아내가
늦은 시간에야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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