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혹시 치매일까?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9. 3. 21. 06:58

아내가서울로 출발할 때 까지는 아직 하루의 여유가 있으나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한테 갖다 줄 반찬거리를 미리 챙기느라
분주하게 서두르는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봄나들이나 함께 다녀오자"는 남편과
싫든 좋든 꼬박 하루를 집밖에서 함께 지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말이 봄나들이지 목적이 따로 있다는 걸 모르는 아내도 아니다.

그럼에도 함께 갈 내 친구 부부의 몫까지 간식거리와 마실 음료수를 챙기며
겉으로나마 싫지않은 표정으로 따라나서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다.

약속장소에서 친구부부를 만나

며칠 전에 갔을 때 꽃망울만 맺혀있던얼레지 군락지에 다시 들러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서
곡성의 석곡을 지날 무렵이 점심때라

끼니를 떼우려고그곳 면소재지의 식당에 들렀다.



( 화순의 얼레지가 피어 있는 계곡에서)

마침석곡 장날이라서 거리는 조금 번잡했지만
식당에 들어가니 손님이라곤 우리들 뿐이라서
주인의 심사가 어떻든 간에 한가로워서 마음에 들었다.

평소 뱃살 걱정을 하느라 고기는 왠만하면 멀리 하려고 했으나
며칠 전 아내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
그냥 지나쳤던 게 걸리기도 해서 주저하지 않고 고기를 시켰다.

오랜만에 고기로 배를 채우고
사진을오랫동안 했다는 주인양반의 사진 경험담을 들은 후

식당 문을 나설 때까지도
내가 그곳에서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다.

햇살은 밝지만 연무가 끼어있는 날씨라서 썩 탐탁스럽지는 않았으나
기왕 나선 김에 며칠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구례의 산수유가 피어있는 마을로 거침없이 달렸다.



(구례 산동에서.....)

미리 듣고 있었던 소문대로

현천마을 산수유는 작년에 비해허전해 보였지만

기념이라도 삼으려고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곳에 올라사진 몇 장을 담고선
곧장 산수유 축제를 한다는 산동으로 향했다.

10여분 남짓 걸려산동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무심결에 주머니를 더듬으니 있어야 할 전화기가 없다.

행여 승용차 안에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차 안을 이잡듯뒤졌으나 없는 전화기가 나타나 줄리 없다.

며칠 전에잊어 먹었던 랜즈 캡을

새로구입을 한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이젠 전화기까지 잊어 먹었다 생각하니

요즘 내 꼴이참 한심스럽다.



( 위 사진에 있는 동그라미 부분을 크게 보기 위해서 crop,

내 아내는 계속해서 내 전화기로 신호를 보내는 중 *^_^* )

기왕먼 거리를 왔으니기념으로 한 장 담아가고 싶어

예전에 봐뒀던 자리로 가서셔터를 몇 번 눌러대 보지만 재미가 없다.

산수유도 작년만큼 아닌 것 같고

오랜 가뭄에 계곡에 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전화기까지 잊어먹었다 생각하니

사진 찍는 일이 재미없어지는 건 당연할 일이다.

아내는 혹시 누군가가 남편의 전화기를 주어 보관하고 있을까 싶어
쉼없이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표정으로 볼 때 아무도 전화기를습득하지는 않은모양이다.

만약계곡이나 낙엽속에 묻혀 있다 할지라도

신호를 보내면 소리가 나기 때문에쉽게 찾을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있어

친구에게 서둘러 사진 몇장찍게 하고선
산동마을을 벗어나왔다.

현천마을에 다시 들러

내가 다녔던 길을 따라 언덕베기를 올라가서 두리번거려 봤지만

있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얼레지를 담느라 엎드렸을 때 빠졌을 거라는 심증을 굳히며
서둘러 화순 한천쪽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친구의 전화에서 벨이 울린다.

"아, 왔다~!!!" 하는 친구의 말에

전화기를습득한 이로부터 온 전화라는걸 직감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었던 음식점의 아짐이 식탁에 올려놓은 전화기를 주어 놓았다가
내 전화기로 마지막 신호를 보냈던 친구의 전화번호를 확인해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주워서 보관을 하고 연락까지 해준 것으로도고마울 일이거늘

"신호를 수 십번 보냈거늘 왜 이제야 연락을 하는거야!"라며
불편했던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잃어버렸던 전화기는 그렇게나마 찾아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중에도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 한켠이 썩 개운치가 않다.

잃어버린 물건은 이 처럼 다시 찾을 수도 있다.
만약 찾지 못할 땐
금전적인 댓가를 치루고서라도 다시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승용차 문을 잠궜는지 안 잠궜는지,
혼자 있던 집에서 외출하면서 전등을 껏는지 안 껏는지 헷갈려
다시 되돌아 가서 확인을 하는 짓을 해대는 건 정신적인 문제라서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

혹시치매일까?

200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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