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 자란 곳이 하도 가난한 벽촌이고 그 곳의 그 시절만 해도
여자 애들은 학교를 보내지 않아도 당연시 되던 시기를 막 벗어날 무렵이라서
나의 국민학교 시절 한 교실에서 공부하던 여학생들은 동갑내기도 더러 있었으나
대부분 내 나이보다 적게는 한 살 많게는 세 살이나 더 먹은 아이들도 적잖았으니
나이로만 따지면 친구라기 보다는 누님들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나를 비롯한 서너명은 친누나와 함께 6년을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으니
누나에겐 동생이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었을테고
나 역시도든든함 보다는 장난끼 많은 녀석들로 부터 동생 취급을 당하는 등
좋은 점 보다는 불편한 점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과거사 때문에 국민학교를 졸업을 하고 40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는 장소에선 어김없이
"네 누나의 친구인 나에게 뭐라고 불러야 하냐?"며 웃곤 하나
그 무렵 시골은 대부문 가까운 일가친척들이 가까운 곳에 살았기에
이리저리 따지고 보면 여학생들은 대부문 누나가 되는 셈이라서
녀석들 입장 또한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자애들이 사춘기를 겪을 무렵 여자애들은
동네의 나이많은 형님들과 어울려 다니거나
결혼을 했다는 여학생도 있었고
풋내가 나서 거들떠 보지도 않던 남자애들이 군대를 갈 무렵엔
여자애들 또한가정을 이뤄객지로 제각각 흩어지면서
대부분 소식을 모른 채 삼십년 이상을 살아 왔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5년 전 어느 봄날,
몇 몇 친구들이 "우리도 옛날 친구들 얼굴이나 보며 살자"고 하기에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을 여러 날 동안 수소문하여 연락을 하고
모이는 날짜와 장소를 정해서 연락을 했더니
남자애들을 풋내기 취급하던 여자애들이 더 많이 모인 걸 보고선
내심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 5년 전부터 1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행사 )
몇 몇 짖궂은 녀석들은 여자친구들에게 그 시절을 비아냥대면서
"너희들 늙은 남편들보다 더 풋풋한 우리들을 보니깐 기분이 어떠냐?"며
앞으로 밉보이면 친구들 틈에 낑겨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통에
모두들 박장대소 하며 웃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여자친구들 한테서
자녀 결혼식 청첩장이 시도때도 없이 날라오더니
요즘 들어선 남자친구들 한테서도 심심찮게 오는 걸 보면서
남자 여자 할 것없이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위고
홀로서 세 아이를 키워낸여자친구가 큰딸 시집을 보낸다기에
친구들도 볼 겸 해서 예식장에 갔을 때,
5년 전에 본 이후 처음 만난 친구는 그 동안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너무 많이 늙어버린 것 같아 가슴이 아팠고,
가끔씩 만나며 살았던 친구들도 얼굴마다 그어진 실금이 더 또렷해진 것만 같아서
인생길에 있어 나와 내 친구들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쯤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 교실에서 6년동안 책상에 금을 그어대며 자리싸움을 하던 친구들,
한 때는 풋내나는 녀석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던 친구들,
그 동안 저 마다 자기의 삶을 열심히 살아 온 친구들,
비록 옛날로 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을지라도
국민학교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만나면 편하고즐겁기만 합니다.
예식장 연회장에서
여자 친구들이 쉼없이 가져다 주는 음식을 보며
"좀 더 영양가 있는 거 가져올 수 없냐?"며 투정대는 건
사춘기시절,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풋내기 취급을 했던 댓가를 지금에 와서야 치루는 것일 뿐,
가만히 앉아서 배를 채우는 재미가 쏠쏠해서 그러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2008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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